부산 고교생 응급실 뺑뺑이 배경에 구급대·병원 '소통 오류'

수용 가능 병원 있는데…"구급대 연락 안 받아" vs "병원서 회신 안 해" 공방

소아 진료 제한 표시 없었지만, 구급상황센터 재확인 절차서 빠져

소아 응급 의료 부족도 문제지만, 연락 체계 재점검 필요

구급차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금지]

(부산=연합뉴스) 차근호 박성제 기자 = 지난 10월 부산에서 발생한 '고교생 응급실 뺑뺑이' 배경에는 지역의 열악한 소아 응급의료 인프라뿐만 아니라 구급대와 응급실 간 '소통 오류'도 있었다는 정황이 나오고 있다.

재발 방지를 막기 위해서는 소방 구급대와 병원 간 연락 방식을 대대적으로 점검하고 개선할 필요가 제기된다.

◇ '수용 가능' 병원 있었는데…

30일 연합뉴스가 더불어민주당 김윤 국회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보건복지부와 소방청 내부 자료에 따르면 '부산 고교생 응급실 뺑뺑이' 사건 때 안타까운 순간이 몇 가지 확인된다.

지난 10월 20일 부산 동래구 사직동에서 18살인 고등학교 3학년 남학생 A군이 쓰러진 채 발견돼 출동한 구급대원이 연락을 돌리기 시작한 시각은 오전 6시 44분이다.

첫 번째로 연락한 해운대백병원이나 두 번째 연락한 동아대병원으로부터 소아신경과 진료가 불가하다는 거절을 들은 구급대원이 세 번째로 전화를 건 곳은 양산부산대병원이었다.

양산부산대병원은 부산·울산·경남에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가장 많고, 어린이전문병원이 있어 소아 진료에 특화된 곳이다.

양산부산대병원은 오전 6시 50분 구급대로부터 A군의 상태를 들은 뒤 "확인해 주겠다"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소통 오류는 이때부터 발생했다.

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병원 측은 10여분 뒤인 오전 7시 4분 "수용이 가능하다"며 구급대에 연락했으나, 구급대가 받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하지만 구급대는 당시 양산부산대병원으로부터 회신이 없었다고 반박하고 있다.

구급대원들은 이를 증명하기 위해 개인 전화와 업무용 휴대전화 통화 내역을 소방청에 제출한 것으로 확인된다.

어떠한 이유건 양측이 서로 연락되지 않으면서 수용이 가능한 양산부산대병원을 놔둔 채, 다른 병원에 잇따라 연락하는 '전화 뺑뺑이' 상황이 이어졌다.

만약 오전 7시 4분 양산부산대병원과 연락이 닿아 이송이 시작됐다면, 심정지가 왔던 오전 7시 25분까지 21분이 남은 시점이어서 결과가 달려졌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A군은 심정지 직후인 오전 7시 30분 이송된 병원에서 40분 뒤 사망 판정을 받았다.

양산부산대병원 전경
[연합뉴스 자료사진]

◇ "진료 제한 메시지도 없었는데…"

당시 양산부산대병원은 구급대와 응급실이 소통하는 '응급의료 종합상황판'에 소아청소년과 관련 아무런 진료 제한 표시도 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된다.

당시 동아대병원이 '소아청소년과 의료진 부재', 해운대백병원이 '소아과 복합 경련 진료 불과' 등을 표시한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진료 제한 표시가 없었음에도 '소방 구급상황센터'가 병원을 상대로 이송 가능 여부를 재확인하는 과정에서 양산부산대 병원은 빠져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구급상황센터는 일선 구급대원을 대신해 상황을 총괄하도록 만들어진 조직이다.

고교생 응급실 뺑뺑이 때 구급상황센터도 구급대원과 함께 병원에 연락을 돌렸는데, 당시 진료 제한 표시가 있는 병원 4곳에는 재차 연락하면서 양산부산대병원은 다시 연락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부산소방본부 관계자는 "당시 양산부산대병원에서 전화를 준다고 해 기다리던 상황"이라며 "해당 병원에 다시 연락할 시간에 다른 한 곳에라도 빨리 연락해보는 게 낫겠다고 판단해 전화하지 않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소방청 관계자도 "수용 불가 응급실 메시지가 없다면 구급대원 수용 문의 시 바로 환자를 수용해야 하는데도 '확인 후 회신해 주겠다'고 답변한 것은 응급실 메시지 자체의 신빙성이 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응급실 종합상황판
[국립중앙의료원 홈페이지 캡처]

◇ 나이 듣고 거절…환자 정보 모두 전달 11곳 중 3곳 불과

소통이 미흡했던 정황은 이뿐만이 아니다.

양측 자료에 따르면 11개 병원에 14차례 전화하는 동안 구급대원이 알고 있는 환자 정보가 모두 전달된 곳은 3개 병원에 불과했다.

대부분 나이, 성별, 호소증상 정도만 전달됐고, 의식 유무나 체온 맥박, 호흡수, 혈압, 산소포화도 등을 의미하는 활력징후는 전달되지 못했다.

소방청 자료에 따르면 대원들이 환자 나이를 말했을 때, 병원이 대부분 소아 환자라 판단하고 거절하면서 나머지 정보가 전달되지 않았다.

복지부 자료는 이와 관련 "병원별 환자 안내 수준이 달랐고, 각 병원에 2번째로 이송 요청을 때 일정 시간이 지났음에도 활력징후 등이 동일한 정보가 전달된 사례도 있다"며 구급대 조치를 지적하고 있다.

소방청은 각 병원에 2번째 이송 요청을 할 때는 1차 때 거절 당한 것이 확인되면 병원 측이 추가 정보 확인 없이 빠르게 수용 거부해버려 활력징후 안내가 불가능했다고 반박한다.

◇ '추적 환자' 확인 절차 없어

병원들이 응급실 상황판을 통해 소아 환자라도 '추적 환자(F/U - followup)'는 수용 가능하다고 표기하는 경우도 있지만, 실제로 환자 이송을 요청할 때 해당 환자가 추적 환자인지를 확인하는 절차는 없었다.

소방에 추적 환자인지를 확인하려고 이름을 물어본 병원은 11곳 중 1곳 밖에 없었다.

부산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표준응급의료 지침(SOP)에 따르면 추적 환자인지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는 지침이 없다"며 "보통 이름과 생년월일로 추적 환자 여부를 병원에서 확인하는데, 이번의 경우 이 과정조차 거치지 않고 연락이 끊겼다"고 말했다.

소방청 관계자는 "응급실 메시지가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또 다른 사례"라면서 "'신규 환자 수용 불가, 추적 환자 수용 가능'이라는 메시지 자체가 병원에서 환자를 선별적으로 수용하겠다는 것을 공지하는 의미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부산지역 보건의료단체 한 관계자는 "응급실 종합상황판이 그동안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토로가 나왔던 만큼 소통체계를 보완하고 재점검하는 게 꼭 필요해 보인다"면서 "구급대와 병원이 수용 가능 전화를 했는지를 두고 서로 공방이 벌어지 않도록 정확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도 필요해 보인다"고 밝혔다.

read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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