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살해범 최근 약 안먹어" 병원밖 정신질환자 관리 어쩌나

치료중단 상태 강력범죄 지속…작년 정신적장애 피의자의 6%가 강력범

지자체 외래치료지원제도 유명무실 속 당사자들 사례관리 등록 기피도

"선진국처럼 사법입원제 도입해야" vs "사회 복귀 인프라 확충이 우선"

스트레스 (PG)
[연합뉴스 자료사진]

(청주=연합뉴스) 이성민 기자 = 충북 충주에서 외조모를 둔기로 살해한 조울증 환자 30대 A씨가 약 복용을 중단한 상태에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파악되면서 관리 사각지대에 방치된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자의적으로 치료를 중단한 일부 정신질환자가 강력범죄를 저지르는 사례가 끊이지 않으면서 이들에 대한 적절한 치료·관리체계를 마련하고 지원시스템도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5일 오후 6시께 충주의 한 아파트에서 함께 살던 80대 외조모를 흉기로 살해한 A씨는 2년 전 조울증 증세로 입원 치료를 받고 퇴원했으나, 최근에는 처방 약을 먹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타지에 거주하는 부모와 떨어져 외조모와 단둘이 이 아파트에 거주해왔으며, 경찰은 증세 악화로 범행한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몇 년만 해도 약물 복용을 중단하거나 치료받지 않은 정신질환자들에 의한 강력범죄가 꼬리를 물고 있다.

지난해 1월 12일 울산에서는 조현병을 앓던 20대 딸이 60대 아버지를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딸은 범행 당일 의자를 부순 뒤 아버지로부터 "이런 식이면 입원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가짜 아버지가 자신을 가두려 한다는 망상에 빠져 범행을 저질렀다.

평소 환청과 망상이 심했지만, 치료에 소극적이고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여 증상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2023년 8월 경기 성남시 서현역 인근에서 차량 돌진 사고를 낸 뒤 흉기 난동을 벌여 2명을 숨지게 하고 12명을 다치게 한 최원종(24)도 정신질환 치료를 중단했다가 범행을 저지른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그는 2020년 '조현성 인격장애(분열성 성격 장애)' 진단을 받은 뒤 약물 복용을 거부하는 등 범행 전까지 별다른 치료를 받지 않은 채 은둔 생활을 해왔고, 스토킹 피해를 보고 있다는 망상 끝에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범행을 저질렀다.

같은 해 대전의 한 고등학교에 침입해 교사를 흉기로 찌른 20대도 조현병과 우울증 진단을 받았으나 입원과 치료를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고, 그해 1월 광주에서 피해망상 증세를 보이다가 어머니를 둔기로 때려 숨지게 한 40대도 우울증 등으로 장기간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전력이 있지만, 범행 전에는 상당 기간 약을 먹지 않았다.

'분당 흉기 난동' 최원종 검찰 송치
(성남=연합뉴스) 홍기원 기자 = 지난 3일 발생한 '분당 흉기 난동 사건' 피의자 최원종이 10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성남수정경찰서 유치장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2023.8.10 xanadu@yna.co.kr

경찰청 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사건 피의자 127만3천921명 가운데 정신적 장애 피의자(발달장애·정신장애 의심자 포함)의 비중은 1%로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전체 정신적 장애 피의자 1만2천482명 중 강력범죄를 저지른 비율은 5.9%(736명)로, 나머지 피의자들의 강력범죄 비율(1.8%)보다 3배 이상 높았다.

이화영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법제이사는 "조현병과 조울증 등은 급성기 때 공격성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며 "약물 복용 등 지속적인 치료를 받으면 관리가 가능하지만, 환자가 자의적으로 치료를 중단했다가 사고로 이어지는 사례가 잦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행 관리 체계로는 정신질환자가 적절한 치료를 받도록 관리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신질환자가 꾸준히 약물 복용과 외래 진료를 받고 있는지 명확히 확인하거나 치료를 강제할 방법이 없는 탓에 사고가 발생한 이후에야 뒤늦게 강제입원 조처가 이뤄지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각 지자체의 정신건강복지센터는 입·퇴원을 거친 중증 정신질환자를 대상으로 전화나 가정 방문을 통해 약물 복용 여부 등을 확인하고 있지만, 당사자가 스스로 사례관리 대상자 등록에 동의해야만 모니터링이 가능해 관리 사각지대에 있는 중증 정신질환자가 허다하다.

중증 정신질환자는 병식(病識)이 없는 사례가 흔해 등록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8월 퇴원한 전국 중증 정신질환자 7천893명 가운데 사례관리 대상자로 등록한 인원은 27.5% 2천173명에 그쳤다.

퇴원 후에도 꾸준한 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자에게 지자체가 외래 진료를 명령하고 비용을 지원하는 '외래치료지원제도'는 이용률이 저조해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태다.

지난해 전국의 비자의 입원, 즉 강제입원 환자 2만203명 가운데 퇴원 후 외래치료명령을 받은 환자는 25명(0.12%)에 불과했고. 이 가운데 17명만 외래치료명령에 응했다.

외래치료명령은 정신과 의료기관이 지자체 정신건강심의위원회에 청구하는 것인데, 대상자가 자·타해로 입원한 이력이 있어야 하고 보호자 동의도 필요해 요건이 까다로운 점이 이용률 저조의 원인으로 꼽힌다.

여기에 치료 명령을 이행하지 않더라도 별다른 불이익이 없어 사실상 강제력이 없고, 환자들이 자신들의 진료 기록이 지자체에 통보되는 것을 꺼리는 점도 의료기관이 제도 활용에 소극적인 배경으로 분석된다.

사법입원제, 정신질환 범죄 대안될까…"재활시설 부족"(CG)
[연합뉴스TV 제공]

이 법제이사는 "행정기관 중심으로 운영되는 현행 제도는 강제성을 갖기 어려워 병원 밖 정신질환자 치료를 감독하는 데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자·타해 위험성이 현실화해 사고가 발생한 뒤에야 입원 조처가 내려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처럼 법원이 정신질환자의 중증도와 위험성을 평가해 예비적으로 입원을 결정하는 사법입원제 도입을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며 "인권과 안전이라는 가치 중 어디에 방점을 둘지 사회적 숙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반면 입원과 같은 강제 조처보다는 정신질환자의 사회 복귀를 위한 인프라 확충이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한결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전략기획본부장은 "정신질환자의 빈곤과 사회적 고립이 범죄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끊는 것이 먼저"라며 "양질의 일자리 연계와 재활시설 확충 등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본부장은 "판사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신체의 자유를 선제적으로 제한하는 사법입원제는 인권 침해 소지가 있으며, 환자들이 정신과 진단 자체를 꺼리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도 했다.

chase_aret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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