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자 셀 수도 없어" 항구 뒤덮은 울음소리...'창경호 침몰' 비극[뉴스속오늘]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1953년 침몰한 여객선 창경호, 위 사진은 사고 발생 1년 전인 1952년 창경호의 모습/사진=국립민속박물관, 강신표 교수 기증자료 1953년 1월 9일 여객선 창경호가 부산 다대포 앞바다 부근에서 강풍을 만나 침몰했다.

창경호는 여수항을 떠나 부산항으로 가는 150톤급 정기 여객선으로 이날도 오후 2시쯤 쌀 400가마를 싣고 부산으로 향했다. 그런데 오후 10시 20분쯤 부산 다대포 앞바다 부근에서 갑자기 몰아닥친 강풍과 풍랑을 만나 순식간에 침몰했다.

이 사고로 수백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당시 일부 언론에서는 사망자 수가 229명이라고 보도했으나, 실제 사망자수가 330명에 달한다는 기록도 있다. 승선 인원조차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사망자수를 정확히 집계하는 게 애초부터 불가능했던 셈이다.

승선 인원 중 살아남은 사람에 대한 기록은 일치한다. 선장, 선원 3명, 중학생 2명, 군인 1명 등 겨우 7명만 살아남은 것으로 파악됐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자료대한민국사에 따르면 생존 학생 중 1명은 당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돌연 탁하는 소리와 함께 그 소리를 돌이켜 생각할 여유조차 없이 선체가 급속도로 경사하기 시작했다"며 "나는 덮어 놓고 바다로 뛰어들어 헤엄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니 어떻게 살아나왔는지 도무지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국회 차원에서 특별조사단이 꾸려졌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창경호 침몰 사고는 인재였다. 천재지변으로 시작됐지만, 부실한 관리 체계가 대형 참사로 번졌다.

1953년 침몰한 여객선 창경호, 위 사진은 사고 발생 1년 전인 1952년 창경호의 모습/사진=국립민속박물관, 강신표 교수 기증자료 만든 지 20년이 넘은 낡은 화물선을 무리하게 여객선으로 개조하면서 화를 자초했다. 화물선을 여객선으로 개조할 때는 객실을 만들기 위해 선체 상부에 상부 구조물을 추가로 올리게 되는데, 이때 선박 전체의 무게 중심이 위로 올라간다. 무게 중심이 위에 있을수록 배가 기울었을 때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려는 복원력이 약해진다.

아울러 창경호는 선령이 20년 이상 된 노후 화물선이었기 때문에 선판이 얇아지거나 보강재가 약해져 있었다. 노후 선박의 구조적 취약성에 무리한 상부 증축이 더해져 선박 자체의 회복 능력이 상실됐을 거란 분석이다.

여기에 승선 인원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점은 상황을 악화시켰다. 승선 명부와 실제 탑승 인원이 일치하지 않아 사고 후 사망자 집계도 제각각이었는데, 정원보다 더 많은 승객이 탔을 가능성이 높다. 당시 창경호에 탈 수 있는 총 인원 표시는 실제보다 100명 많게 되어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긴급 상황에 대한 대비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창경호에는 구명보트 한 척과 구명복 70벌이 비치돼야 했지만 이 비상품들은 배 안이 아닌 본사 창고에 보관돼 있었다. 생사를 가르는 절박한 순간, 승객들에게 허락된 구명복은 단 한 벌도 없었다.

창경호 침몰 소식에 이른 아침부터 부산항으로 달려온 가족들은 절망적인 비보를 마주해야 했다. 승객 대부분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차가운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한 이들의 이름을 부르는 유족들의 울음소리가 항구 전체를 뒤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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