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쓰려도 매운 음식 먹을래"…2030 '맵부심', 젊은 위암 부른다

[정심교의 내몸읽기]

매운 라면, 떡볶이, 족발, 불닭 등 맵고 자극적인 음식이 2030 세대의 일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위쑤시개'(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매운 음식을 먹는 행위), '맵부심'(매운맛을 즐기는 데 대한 자부심), '맵덕'(매운맛 덕후) 같은 신조어까지 등장할 정도로 매운 음식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었다. 그런데 이런 매운맛이 강한 식문화가 20~30대 '젊은 위암'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2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20~30세대에서 위암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위염·십이지장염 환자 수는 2020년 109만명에서 2023년 113만명으로 4년 연속 증가했다. 지난해 위암까지 진단받은 2030세대는 전체 위암 환자의 1.8%를 차지했다.

국가암정보센터에 따르면 2022년 위암 발생자는 2만9487명으로 전체 암종 가운데 5위를 차지했다. 발생 원인은 유전적 요인,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 감염, 식습관 등 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은 위 점막에 서식하는 세균으로, 주로 사람 간 접촉을 통해 전파된다. 감염되면 위 점막에 만성 염증이 생기고, 이로 인해 위축성 위염과 장상피화생으로 이어져 위암 발생 가능성을 높인다.

강동경희대병원 소화기내과 박수비 교수는 "맵고 짠 음식을 즐겨 먹으면 위 점막을 계속 자극해 만성 염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특히 염장식품·가공육에 포함된 질산염·니트로사민 성분은 만성 위염, 위축성 위염, 장상피화생 환자의 위 점막 손상을 가속화하고 위암 위험을 높인다"고 경고했다.

매운맛에 한 번 매료되면 매운 음식을 계속 찾기 쉬운데, 왜 그럴까. 매운맛의 주요 성분인 캡사이신은 혀와 구강 내 통각 수용체를 자극해 '통증과 비슷한' 신호를 뇌에 전달한다. 실제 통증은 아니지만 뇌는 통증으로 인식해 엔도르핀(endorphin)을 분비한다. 통증 완화, 쾌감을 유도하는 신경전달물질인 엔도르핀은 사람을 일시적으로 기분 좋게 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해준다.

또 캡사이신은 아드레날린(adrenaline) 분비를 촉진해 일시적 각성 효과를 내고 집중력을 높여준다. 매운맛의 강한 감각 자극을 받으면 현재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주의를 분산시키고 기분 전환 효과를 제공하는데, 뇌는 이런 효과를 또 얻기 위해 매운맛을 찾게 한다.

매운맛을 과도하게 먹으면 소화기관에 부담을 줄 수 있다. 캡사이신은 위산 분비를 자극해 위 내 산성 환경을 강화하고, 이는 △속쓰림 △복통 △소화불량 등의 증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기존에 위식도역류질환이 있을 때 캡사이신이 체내 들어오면 식도 점막을 자극하고, 위산이 더 심하게 역류할 수 있다. 위 점막이 약한 사람, 위염·위궤양·십이지장궤양 등 기저 소화기 질환이 있는 사람이 매운 음식을 먹으면 복통·위경련으로 이어지거나 장운동이 항진돼 설사가 유발될 수 있다.

위 질환이 없는 사람은 매운 음식을 먹을 땐 공복 상태를 피하고, 소량부터 천천히 섭취해 위장에 무리 주지 않게 해야 한다. 채소·단백질 등 영양소가 풍부한 식품과 함께 먹어 영양 균형을 유지하고 위장을 보호해야 한다. 매운맛의 강도는 개인의 건강 상태와 경험에 맞게 조절하고 무리한 도전은 피해야 한다. 이미 위염·위궤양·위식도역류질환 등 소화기 질환을 앓는다면 매운 음식 섭취를 삼가야 한다.

매운 음식을 섭취한 후 속 쓰림, 복통, 소화불량 등 이상 증상이 발생했을 경우 즉시 섭취를 중단하고, 필요할 경우 전문의의 상담을 받는 게 권장된다. 문제는 조기 위암은 대부분 증상이 없다는 것. 증상이 있더라도 속쓰림이나 더부룩함처럼 일반적인 소화기 질환과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명치 통증, 소화불량, 체중 감소 등의 증상을 가볍게 넘기다 진단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조기 위암은 증상이 아닌 정기적인 위내시경 검사를 통해 조기에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

박수비 교수는 "만성 위염을 방치하면 위 점막이 계속 손상당해 위암으로 진행할 수 있다"며 "젊을수록 증상이 없더라도 정기적인 위내시경 검진을 통해 위 질환을 조기 발견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국가건강검진에서는 만 40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2년에 한 번 위내시경 검사를 권장하지만, 가족력이 있거나 헬리코박터균에 감염된 경우라면 더 짧은 간격으로 검사받는 게 안전하다. 박 교수는 "증상이 없을 때 받는 위내시경 검진이 생존율을 높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위 점막 상태와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 감염 여부를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식습관을 교정하는 것도 위암을 예방하는 수칙이다. 짜고 매운 음식, 절임류, 훈제육의 섭취를 줄이고 신선한 채소·과일을 충분히 먹는 게 기본이다. 흡연과 과음은 위 점막을 손상해 위암 재발 위험을 높이므로 피해야 한다.

박 교수는 "미각은 단순한 맛의 경험을 넘어 신체적·정신적 건강과도 밀접한 감각"이라며 "매운맛뿐만 아니라 다양한 맛을 균형 있게 즐기며 영양을 고루 섭취하려는 식습관이 건강을 유지하는 수칙"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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