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견 표현 허위 따지기 어려워…국가가 판단 유보하면 '무형적 피해'"
"확신 없는데 결론 내는 게 더 위험" 지적도…항소 기한 내달 2일까지

(서울=연합뉴스) [촬영 임화영] 2020년 9월 서해에서 발생한 공무원 피격 사건을 은폐하려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왼쪽부터),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서욱 전 국방부 장관이 5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결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5.11.5 hwayoung7@yna.co.kr
이런 결론을 놓고 상급심 판단을 받아봐야 한다는 유족 측의 주장과 '조작 기소', '잘못된 기소'라는 여권의 비판이 맞서는 가운데, 검찰이 '대장동 사건' 이후 또 한 번 항소를 포기할지 관심이 쏠린다. 검찰 수사팀과 지휘부 간 의사 교환 및 결정 과정도 주목된다.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은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의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적 비판을 무마하기 위해 명확한 근거 없이 고(故) 이대준씨를 '월북자'로 몰아갔다고 주장했다.
해양수산부 소속 서해어업관리공무원이었던 이씨는 2020년 9월 21일 소연평도 남방해역에서 실종됐다.
이튿날 북한 선박에 발견된 이씨는 구조 없이 표류 상태로 장시간 머물다 북측 해역에서 피살된 후 소각됐다.
사건을 수사한 해양경찰청은 24일 1차 수사 결과 발표에서 "이씨의 자진 월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닷새 뒤 나온 2차 수사 결과에서는 표류 예측 결과 분석 등을 제시하면서 "이씨가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후 추가 수사를 진행한 해경은 다음 달 22일 "정신적 공황 상태에서 현실 도피 목적으로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최종 수사 결과를 내놨다.
검찰은 이러한 정부 발표와 보고서, 보도자료 등이 허위라고 보고 공소사실에 이를 적시했다. 당시 제한된 정보만을 가지고 있어 월북 여부를 명확히 판단하기 어려웠음에도, 섣불리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발표한 것이 허위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이 같은 검찰의 주장이 '사후적 관점에서의 평가 또는 지적'에 불과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면서 "월북이라고 판단된다"는 정부 당국의 표현 또한 최종적인 결론이 아니고, 가치평가 내지 의견 표현에 불과해 허위 여부를 따지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만 법조계에서는 해경이 발표한 수사 결과를 단순한 가치평가 또는 의견 표현이라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 기관이 여러 차례에 걸쳐 공식 브리핑을 통해 '월북으로 판단된다'고 밝힌 만큼, 당시 대부분의 국민과 언론은 이를 '의견'이 아닌 '사실'로 받아들였을 개연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씨의 유족 측 변호를 맡은 김기윤 변호사 또한 "해경 수사결과 발표를 '의견 제시'로 본 법원의 판단은 도저히 수긍하기 어렵다"며 "상급심에서 이에 대한 판단을 다시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연합뉴스) 최재구 기자 = 2020년 9월 서해에서 발생한 공무원 피격 사건과 관련해 유가족 이래진 씨가 26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박지원 전 국정원장, 서욱 전 국방장관 등에 대한 1심 선고공판 뒤 법정을 나서며 발언하고 있다. 2025.12.26 [공동취재] jjaeck9@yna.co.kr
또한 검찰은 만약 당시 정부가 제한된 정보만을 가지고 있어 월북 여부를 명확히 판단하기 어려웠다면, 최소한 있는 그대로 "월북인지 알기 어렵다"고 발표했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재판부는 정보가 제한돼있고 이에 따라 어떤 오류가 생길 위험이 있을지라도, 최대한 분석하거나 추가 정보를 모아 공식적이고 통일된 판단(결론)을 내리고 이를 국민들에게 제시하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일반적으로 국가는 국민들이 의혹을 갖는 것에 대해 공식적인 판단과 근거를 제시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모르겠다' 또는 '알 수 없다'고 발표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의문이라는 의견도 밝혔다.
또 재판부는 "'어떠어떠한 근거를 갖고 해당 판단에 이르게 됐고 이를 국민에게 설명하는 일련의 과정'을 섣불리 형사책임의 영역으로 끌고 오는 것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국가안보, 남북관계와 관련한 고도의 판단이나 행정행위를 사후의 형사사법적 잣대로 판단하려 할 경우 자칫 큰 부작용이 뒤따를 수 있다는 취지다.
그러면서 "이에 대한 형사사법적 판단을 내리는 경우, 당국, 특히 책임자들은 판단의 적정성 못지않게 적시성, 신속성이 중요한 결정이나 판단을 내릴 때 사후의 책임을 피하고자 주저하거나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게 될 것"이라며 "이는 우리 사회 전체에 더 큰 무형적 피해를 야기할 위험성이 있다"고 부연했다.

(서울=연합뉴스) '서해 공무원 피살(피격 사건)'을 감사해 온 감사원이 7일 해경 고위간부에 대한 정직 등 관련 부처 관계자 13명에 대해 징계·주의 등을 요구했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은 2020년 9월 22일 해양수산부 소속 어업지도 공무원인 이대준 씨가 서해 연평도 인근에서 실종된 후 북한군에게 피살되고 시신이 해상에서 소각된 사건이다. 사진은 인천시 옹진군 소연평도 해상에 실종됐다 피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씨가 탑승했던 어업지도선 무궁화 10호. 2023.12.7 [연합뉴스 자료사진] photo@yna.co.kr
이와 관련해서는 정부가 내리는 결정이나 판단에서 '신속성'과 '적정성(정확성)'은 어느 한쪽이 우선하는 가치가 아니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정부가 신속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부정확하거나 오류가 있는 판단을 내리고 이를 국민에게 공표하는 것은 용인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이 사건은 숨진 이씨에게 '월북자'라는 사회적 낙인이 씌워지는 사안이었던 만큼, 이씨와 유족의 명예를 고려해 더욱 신중한 판단이 필요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안사건 수사 경험이 많은 한 변호사는 "정부 발표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오류나 거짓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100%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국민들이 궁금해한다는 이유로 특정 결론을 내놓는 것이 오히려 사회에 더 큰 무형적 피해를 야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백번 양보해 처음 수사 결과 발표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 하더라도, 이후 다른 증거들이 나왔다면 이를 정정했어야 한다"며 "잘못된 것을 알고도 가만히 놔둔 것 역시 문제"라고 했다.
검찰은 판결문 내용을 검토하면서 항소 제기 여부를 검토 중이다. 항소 기한은 다음 달 2일까지다.
다만 이재명 대통령과 김민석 국무총리가 1심 무죄 선고 이후 "조작 기소"라며 사실상 항소 포기를 공개적으로 요구한 만큼, 실제 항소 제기가 이뤄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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