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얼마나 국민을 우습게 여기면 [아침햇발]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특수공무집행방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 사건의 결심공판에서 최후진술을 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제공/연합뉴스

황준범

논설위원

윤석열은 지난 26일 체포 방해 등 사건 재판 최후진술에서 “제 아내도 구속돼 있고, 제가 집에 가서 뭘 하겠냐”며 오는 1월18일 이 사건 구속기간 6개월이 끝나더라도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고 했다. “제가 밖에 돌아다니는 게 영 불편한 분들도 많을 텐데”라는 말도 했다. 내란특검이 기소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체포영장 집행 방해 △비상계엄 선포 관련 국무위원의 심의권 침해 △국무회의·비화폰 증거인멸 등은 범죄 자체가 성립되지 않으니, 자신을 계속 구속하려면 다른 사건에서 영장을 발부받으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윤석열은 내란 사건, 평양 무인기 투입, 한덕수 전 국무총리 재판 위증, 체포 방해 등 12·3 관련 4개의 재판과 채 상병 사건 수사 외압, 이종섭 전 국방장관 오스트레일리아 도피, 명태균 여론조사 수수까지 모두 7개의 재판을 받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빨리 결심공판이 이뤄진 체포 방해 등 사건 재판에서 윤석열이 10년 구형을 받으며 한 최후진술은, 역시나 ‘전면 부인’이다. 59분간 그는 계엄의 정당성과 수사 절차의 위법성 주장을 되풀이했다. 내년 2월 1심 선고를 앞둔 ‘본류’ 내란 재판에서 더 부각될 궤변이다.

윤석열이 지속적으로 ‘야당이 국가비상사태를 발생시켰고, 계엄은 짧았으며, 인명 피해도 없었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형인 내란 우두머리 유죄 판결을 피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하지만 1997년 전두환·노태우에 대한 대법원 판결과 지난 4월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문은 윤석열 앞에 ‘내란 우두머리 외길’을 예고하고 있다.

우선, 윤석열은 지난 26일에도 비상계엄은 대통령의 배타적인 헌법상 권한이므로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전두환의 비상계엄 선포·확대를 내란죄로 처벌했고, 헌재 또한 윤석열 탄핵심판에서 “비상계엄도 사법심사의 대상이 된다”고 적시했다.

윤석열은 또 “거대 야당이 지배하는 국회가 반국가세력, 체제전복세력, 외부의 국권침탈세력과 언제든 연계하고 정치적으로 필요하면 손잡는 방식으로 취임 초부터 정부의 발목을 잡았다”며 “국민들로 하여금 제발 일어나서 관심 갖고 비판도 해달라는 걸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계몽령’ 타령을 반복한 것이다. 그러나 헌재는 이미 윤석열을 파면하면서 “‘경고성 계엄’ 또는 ‘호소형 계엄’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중대한 위기상황을 병력으로써 극복하는 것이 비상계엄의 본질이므로, 그 선포는 단순한 경고에 그칠 수 없다”는 것이다. 헌재는 또 “다수의 횡포라고 판단했더라도 헌법이 예정한 자구책을 통해 견제와 균형이 실현될 수 있도록 했어야 한다”며 윤석열 주장에 명확히 선을 그었다.

윤석열의 구체적인 목표는 내란죄 성립을 방어하는 일일 것이다. 형법 87조(내란)는 “대한민국 영토의 전부 또는 일부에서 국가권력을 배제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자”를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윤석열이 “군 병력을 최소화했다”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를 바로 수용했다” 등의 주장을 하는 이유다. 하지만 헌법기관인 국회의 활동 금지를 명시한 계엄사령부 포고문과 병력의 국회·선거관리위원회 투입은 피할 수 없는 ‘국헌 문란’의 증거다. 대법원이 전두환 재판에서 비상계엄의 전국 확대 사실 자체가 국민에게 기본권 제약의 위협을 줄 수 있다며 ‘폭동’에 해당한다고 판결한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대한민국 전역”에 내린 윤석열의 계엄 포고령도 마찬가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헌재 또한 “비상계엄이 선포되는 즉시 피청구인(윤석열)은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고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관하여 특별한 조치를 할 권한을 보유하게 된다”고 적시했는데, 이는 비상계엄 선포 자체가 대국민 협박 성격의 폭동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국민 눈에는 그의 앞날이 보이는데, 윤석열은 아직 망상 속에 있는 듯하다. 반성·사죄는커녕 법정에서 헛웃음을 연발하고 계엄은 정당했다 우기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그는 “대통령이 계엄을 해제했는데도 막바로 내란몰이 하면서 관저에 막 밀고 들어오는 걸 보셨지 않냐”며 “얼마나 대통령을 가볍게 생각하면 이렇게 하겠냐”고 했다. 헌정질서를 부숴 놓고도 대통령 대접을 받아야겠다는 인식이다. 헌법과 국민을 얼마나 우습게 보면, 대통령직을 얼마나 가벼이 여기면 저런 말이 나오는 건가. 윤석열 재판들이 1심도 못 내린 채 해를 넘긴다. 늦어진 만큼 차갑고 단단한 판결문이 나와야 할 것이다.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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