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조 주한 가나대사 연합뉴스 인터뷰…주한 아프리카 대사로는 첫 한국계 주인공
성공한 사업가서 대사로 화려한 변신…"한국인 근면함이 큰 자산"

(서울=연합뉴스) 이지은 기자 = 최고조 주한 가나대사가 지난 12일 서울 용산구 주한 가나대사관저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5.12.13 jieunlee@yna.co.kr (끝)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최고조(48) 주한 가나대사가 12일 국내 언론 가운데는 연합뉴스와 처음으로 인터뷰했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에게 가나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신임장을 제출한 뒤 대사로 공식 업무를 개시한 이날 주한 가나대사관저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태어난 한국 땅에서 가나 대사로 일하는 것이 영광스럽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러면서 "대사로서 가장 큰 목표는 저를 낳아준 한국과 저를 키워준 가나가 가장 좋은 친구, 가장 든든한 동반자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첫 한국계 주한 아프리카 대사인 그는 이날 인터뷰 때 가나의 전통 천인 켄테를 사용해 만든 나비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가나의 국기 색깔과 같은 노랑, 빨강, 초록색이 들어간 켄테 나비넥타이 의미에 대해 "가나의 정체성을 상징하면서 가나와 한국이 서로 필요하고 가장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한 마리 나비의 날갯짓으로 나비효과를 꿈꾼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최고조 주한 가나대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중학생 때 선교사 아버지 따라 가나로…"가나 남는 선택으로 한-아프리카 가교"
한국과 가나가 수교한 1977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난 자칭 '가나 수교둥이'인 최 대사는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마친 뒤 중학생이었던 1992년 선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가나에 정착했다.
피부색이 다를 뿐 아니라 영어 한마디 제대로 못 하고 현지 문화도 모르는 한국에서 온 중학생에게 가나의 학교생활은 큰 도전이었다.
"처음엔 놀림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 속에 호기심, 친근함 그리고 따듯함이 자리하고 있었다고 깨달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장기였던 탁구로 학교를 석권하고 현지 친구들과 함께 뒹굴자 서서히 친구들이 마음을 열었다.
그는 정·재계 지도자 자녀들이 많이 다니는 현지 명문 고등학교와 가나 국립대 경영학과를 거치며 가나 주류 사회에 진입할 발판을 마련했다.
인생의 분기점은 고등학교 졸업이었다. 미국과 한국 대학에 진학할 조건을 갖췄지만, 그는 가나에 남는 길을 선택했다.
당시 최 대사의 아버지는 "미국에 가면 수많은 한국인 중 한 명일 수 있지만 가나에 남으면 더 귀한 존재가 돼 한국도 너를 필요로 하게 될 것"이라고 조언했는데 이 말이 그의 마음을 결정적으로 움직였다.
최 대사는 "돌아보면 그 선택이 제 인생을 완전히 바꾸었다"며 "가나에 남았기에 나는 가나를 사랑하는 한국인, 한국과 아프리카를 잇는 다리가 될 기회를 얻었다"고 말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가나에 남기로 결정하고 가나 국적 취득을 정식으로 신청했다.
그는 이런 이력 때문에 한국과 가나에 대해 "제게는 어머니가 두 분 있다. 한 분은 저를 낳아주신 대한민국이고 또 한 분은 저를 키워주신 아프리카 가나"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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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나 디지털 경제 선도하는 기업인으로 성공…자녀 6명 둬
최 대사는 대사가 되기 전 가나에서 성공한 사업가로 먼저 알려졌다.
그는 "대학교 등록금을 마련해야 했고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 했다"며 "그 선택이 결과적으로 제 인생을 완전히 바꾸는 출발점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프리카 최대 통신사인 MTN의 파트너사 '나나텔레콤'과 핀테크 선도기업 '페이스위치'를 설립하는 등 가나의 디지털 경제 발전을 이끌었다.
아프리카에서 사업가로 성공한 비결에 대해 "정직하게 그리고 끈기 있게 버텼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며 "한국인의 근면함이 제게 큰 자산이 됐고 그 덕분에 가나 사람들에게 믿을 수 있는 파트너로 보였던 것이 많은 기회를 열어준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 현지인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쌓은 인연은 장래 사업을 할 때 그에게 큰 자산이 됐다.
최 대사는 1992년 가나에서 민정이 출범한 이후 5명 대통령과 모두 개인적으로 인연을 맺었다.
이 중 3명의 대통령과는 한국에서 특사나 고위 인사가 올 때 그가 통역과 자문을 맡으며 양국 관계가 발전하도록 도왔다.
이런 경험이 결국 최 대사가 주한 대사로 부임할 수 있는 힘이 됐다.
아프리카는 출산율이 높은 대륙인데 그도 자녀를 6명이나 뒀다.
최 대사는 우스갯소리로 "5번째 아이를 낳으면서 이름을 '이제 그만 낳겠다'라는 의미로 '안나'라고 지었는데 미국에 갔을 때 현지에서 '애나'라고 불렸다"면서 "결국 1년 후 아이가 또 태어났다"며 웃었다.

(서울=연합뉴스) 이지은 기자 = 최고조 주한 가나대사가 지난 12일 서울 용산구 주한 가나대사관저에서 진행한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가나 전통 의상을 입고 있다. 2025.12.13 jieunlee@yna.co.kr (끝)
◇ 가나서 "대사에 왜 한국계" 한때 논란…현지인과 어울리는 사진으로 여론 대반전
성공한 기업인으로 가나 사회에 기여했지만, 그가 주한 대사로 임명되자 가나 소셜미디어에서는 찬반 논쟁이 일면서 대사 임명이 국가적 이슈로까지 확대됐다.
그때 가나인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다름 아닌 최 대사가 현지 중학교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며 찍은 사진 한 장이었다.
"가나에 처음 왔을 때 제 어린 모습, 현지 중학교에서 친구들과 함께 웃는 사진, 저와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 전한 일화 그리고 제가 선교적 나눔의 삶을 살아온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퍼져가면서 여론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가나인들이 '이 사람이 진짜 우리 사람이구나'라고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결국 90%가 넘게 최 대사 임명에 찬성하는 분위기로 반전됐다.
그는 지난 10월 한국계 첫 주한 아프리카 대사로 한국에 부임했다.

[최고조 주한 가나대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아프리카에도 한류 바람…가나로 돌아갈 때 칭찬받는 대사 희망"
최 대사는 아프리카에서 불고 있는 한류 바람을 언급하며 대사로서 한국과 문화 교류에 힘을 쏟겠다고 밝혔다.
그는 "가나에는 혼자 K팝 노래 한 곡을 끝까지 부를 수 있는 젊은이들이 정말 많다"며 "제가 이번에 주한 가나대사로 임명됐을 때 수많은 가나 친구는 저를 보고 웃으며 '오빠!'(Oppa!)라고 외쳤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2027년 한국과 가나 수교 50주년을 맞아 한국을 대표하는 K팝 가수가 가나에서 월드투어 공연을 하고 현지에서 기억에 남을 따듯한 기부와 사회공헌도 함께 할 수 있도록 현재 협의를 준비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최 대사는 '가나 대사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가장 큰 목표는 저를 낳아준 한국과 저를 키워준 가나가 가장 좋은 친구, 가장 든든한 동반자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라며 "가나로 돌아가는 날, 가나 국민 앞에서 정말 잘했다고 칭찬받는 대사가 되고 싶다"고 대답했다.
그는 '기회의 땅' 아프리카에서 성공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도전을 응원하는 메시지를 전했다.
"모두가 향하는 곳은 이미 자리 경쟁이 시작된 곳입니다. 하지만 아무도 가지 않는 곳에서는 우리가 첫 번째가 될 수 있습니다. 첫 번째에 기회는 가장 크게 열립니다. 아프리카는 지금 바로 그 첫 번째가 될 수 있는 무대입니다."
sungjin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