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가 그린란드를 차지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은 처음이 아니며, 1기 임기 동안 유럽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그런 발언을 비웃었다. 하지만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 이후 이제 아무도 웃을 수 없게 됐다.”(BBC)
■ 북극항로의 핵심…지정학적 전략 요충지
북극해와 대서양 길목에 위치한 덴마크의 자치령 그린란드는 216만㎢의 자원이 풍부한 섬이지만, 영토의 84%가 얼음으로 덮여 있다. 약 5만6000명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이중 90%는 원주민 이누이트계다. 이곳엔 사유지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아 땅을 사고팔 수 없다. 주민들은 대체로 어업에 종사한다. 그린란드가 특별한 이유는 러시아와 유럽, 미국 사이에 있다는 지정학적 위치, 풍부한 천연자원, 그리고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는 북극 항로이기 때문이다.
그린란드는 북극과 대서양을 잇는 길목에 자리 잡고 있어 안보와 무역 모든 면에서 중요하다. 예컨대 러시아가 탄도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최단 경로가 그린란드와 북극 상공을 통과한다. 때문에 미국은 냉전 시기부터 그린란드를 방어 요충지로 활용해 왔으며, 앞으로 트럼프 행정부가 구상하는 미사일방어체계인 ‘골든돔’에도 이 지역 감시 자산이 필수적이다.
뿐만 아니라 그린란드와 인근 해역엔 석유·가스·희토류 등 풍부한 천연자원이 묻혀 있다. 희토류는 전기차, 풍력터빈, 군수 장비에 필수적인 자원으로, 중국이 희토류 산업을 사실상 장악한 상황에서 미국이 전략적 확보에 나선 대상이기도 하다. 험준한 자연환경과 부족한 기반시설, 환경 규제 등으로 인해 개발이 쉽지 않지만, 기후변화로 북극권 얼음이 녹고 있어 보다 접근하기 쉬워질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마이크 왈츠 전 국가안보보좌관(현 UN 주재 미국대사)은 2024년 1월 폭스뉴스에 출연했을 당시 “트럼프의 그린란드 집착은 희귀 광물과 천연자원 확보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해상 통행을 가로막았던 빙하가 녹기 시작하며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최단 해상 운송로로서의 역할도 각광받고 있다. 중국은 북극 항로를 통해 ‘북극 실크로드(a polar silk road)’를 개척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운 상태다. 즉 미국, 중국, 러시아 모두 북극 지역을 놓고 경쟁에 뛰어든 셈이다.

■ 미국, 이미 그린란드서 군사 활동해 와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 러시아를 거론하며 “국가 안보 측면에서” 그린란드가 필요하다고 강조하지만, 미국이 자국 방어를 위해 그린란드를 완전히 소유해야 할 까닭은 없다. 미국은 이미 1943년부터 운영 중인 피투피크 우주 기지를 통해 그린란드에 주둔하고 있기 때문이다. 1951년 미국과 덴마크 간 방위 협정에 따라 미국은 이 기지를 계속 사용할 수 있으며, 원하는 만큼 병력을 파견할 수도 있다. 이곳엔 북극을 지나는 미사일을 추적할 수 있는 제12우주 경보 비행대 등이 주둔하고 있다.
미국과 덴마크 간 방위 협정의 뿌리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덴마크는 나치 독일이 점령한 상태였다. 고국과 연락이 두절된 상황에서 워싱턴에 주재하던 덴마크 대사가 직접 미국과 그린란드의 방위 협정을 체결했다. 나치가 그린란드를 미국으로 가는 징검다리로 이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독일군은 이미 섬 동쪽에 소규모 기지를 설치해 둔 상태였다. 미군은 결국 독일군을 몰아내고 그린란드에 군 시설을 최소 12곳 건설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뒤 미국은 다른 기지들을 폐쇄했지만 북극 상공을 넘어오는 미사일을 감시할 수 있는 피투피크 우주 기지를 남겨두었다.
■ “미국, 30분이면 그린란드 접수” 보도도
반면 덴마크군의 주둔 병력은 소규모다. 특수부대를 포함해 수백명의 병력이 주둔하는 것이 전부다. 덴마크 정부는 기지 시설을 개선하고 감시를 강화하겠다고 밝혔으나, 미국 매체인 폴리티코 등은 미군이 무력을 사용할 경우 그린란드를 30분 안에 접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덴마크 쪽은 미국이 굳이 소유하지 않고도 충분히 전략적 이점을 누릴 수 있다며, 미국의 소유 주장에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코펜하겐 소재 덴마크 국제 연구소 선임 연구원인 미켈 룬게 올레센은 미국 경제매체인 포천과의 인터뷰에서 “그린란드 방위 협정은 굉장히 관대하고 개방적”이라며 “미국은 이 합의 하에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안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덴마크 국방 분석가인 페테르 에른스트베드 라스무센도 뉴욕타임스에 “군사 작전 변경 시 덴마크·그린란드와 협의해야 한다는 조항은 형식적인 절차일 뿐”이라며 “덴마크에 기지, 비행장, 항구를 건설하고 있다고 통보하기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가 정말 안보 강화에 있다면 언제든, 지금도 당장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얘기다.

■ 목표는 소유권…동맹인 유럽 겨누는 트럼프
유럽에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종전 계획이 논의되는 상황 속에서 미국을 자극할 만한 대응을 꺼리는 기색이다. 6일 6개국만 덴마크와 함께 공동 성명을 내고 북극 안보는 미국을 포함해 나토 동맹국이 공동으로 달성할 문제이며, 덴마크와 그린란드 문제는 그 나라에서 결정할 문제라고 밝혔다. 유럽연합 전체 회원국(27개국) 명의의 성명은 나오지 않았다. 또 비판 속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적으로 비난하는 발언은 피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한결 더 단호한 발언을 연일 내놓았다. 제이디 밴스 부통령은 7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만약 러시아나 중국이 우리 대륙이나 유럽을 향해 핵미사일을 발사한다면 그린란드는 그 미사일 방어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유럽, 특히 덴마크인들이 그린란드 안보를 보장하는 역할을 해 왔느냐고 하면 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라고 말해 나토를 정면으로 겨눴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진지하게 다루라”고 경고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8일 공개된 뉴욕타임스와의 전날 인터뷰에서 “(그린란드의) 소유권이 중요하다”고 말해, 군 기지만으로는 충분치 않고 그린란드 전체를 소유할 뜻이 있음을 분명히 했다. 그린란드 획득과 나토 유지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 우선순위냐는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직접적인 답변을 피하면서도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수도 있다”고 시사했다. “(나를 막는 데엔) 국제법은 필요 없다”고도 했다.
비비시(BBC)는 안보를 미국에 의존해 온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일제히 큰 소리를 내지 못하는 유럽의 문제점이 다시 한 번 드러났다고 짚었다. 줄리앤 스미스 전 나토 주재 미국 대사는 “유럽은 자제 촉구를 넘어 비상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며 “유럽연합을 분열시킬 뿐 아니라 나토 존립 위기가 될 수 있는 상황”이라고 경고했다.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