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3년 조지 부시 당시 미 행정부는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정부가 9·11 테러를 일으킨 알카에다를 지원하고 대량파괴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하며 침공해, 중동에 혼란만 키우고 미국이 주장하던 규칙 기반의 질서에도 큰 타격을 줬다. 트럼프 행정부도 이번에 미국의 마약 남용 사태와는 큰 관련이 없는 베네수엘라에 책임을 물어 베네수엘라를 침공했다.
이라크 침공 때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무장해제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제출해 이라크 침공에 대한 안보리 승인을 구하는 척이라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에 유엔 안보리에 베네수엘라 침공 관련 결의안을 제출해 유엔 승인을 구하려는 제스처도 취하지 않는 등 국제법에 대해 신경조차 쓰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 부위원장인 마크 워너 민주당 의원은 3일 성명을 내어 “미국이 범죄 행위를 저질렀다고 외국 지도자를 비난하며 그 나라를 침공해 지도자를 체포하는 군사력 사용 권리를 주장한다면, 중국이 대만에 대해 같은 권리를 주장하는 것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라고 정면 비판했다. 워너 의원은 “블라디미르 푸틴(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납치하고 (트럼프 행정부와) 비슷하게 정당화하는 것을 무엇으로 막을 것인가?”라며 “일단 이런 선을 넘으면 세계적인 혼란을 억제하는 규칙들은 붕괴하기 시작하고, 권위주위적 정권들이 먼저 이를 이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올해 말 은퇴할 예정인 공화당 하원의원 돈 베이컨도 “나는 이번 일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불법적이고 야만적인 군사행동 또는 중국의 대만 침공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할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자신들의 세력권을 일방적으로 설정하고 구획하는 데 선례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는 첫 국가안보전략(NSS)에서 대외정책의 최우선 사안으로 서반구 우선주의를 천명했고, 이에 기반해 베네수엘라에 무력개입했다. 중국과 러시아도 비슷하게 자신들의 세력권을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미국의 패권적 행동은 심각하게 국제법을 위반했다”며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을 비난했지만, 명분 쌓기라는 지적도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지난해 9월 이후 미국의 베네수엘라 개입을 사실상 방관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대만 문제를 놓고 트럼프 행정부와 타협했다. 미·중·러가 세력권을 나눠 먹는 짬짜미를 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