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아이들 파티인데…물과 사과 1개외에 모든 음식 금지한 양엄마"

"벨트, 채찍, 금속구두, 주먹으로 18세까지 폭행 당했다"

"나는 비행기 안에서만 맞지 않고 편하게 잠들 수 있었다"

"신고했는데 경찰도 도와주지 않았다"…벨기에 입양인 박순영씨 인터뷰

10세 당시의 박순영 씨
[본인 제공]

(서울=연합뉴스) 윤근영 선임 기자= "나는 항상 굶주렸습니다. 어린 시절, 파티에 가서도 물과 사과 1개 말고는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양어머니는 내가 뚱뚱하다면서 먹으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폭력도 일상이었습니다. 양어머니는 벨트, 채찍으로 때렸습니다. 금속 구두로 차고, 주먹으로 얼굴을 구타했습니다. 머리카락을 잡아 흔들며 폭행하기도 했습니다. 여러 차례 내 팔을 부러뜨리려 했습니다. 그 결과 지금도 나에게는 어깨에 심각한 통증이 남아 있습니다. 사소한 이유로 방에 감금되기도 했습니다. 성적표가 나쁘면 양어머니는 내 방에 들이닥쳐서는 자고 있는 나를 때렸습니다."

이는 벨기에 입양인 박순영(49) 씨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인터뷰는 2025년 12월 22일부터 전자메일, SNS 등을 통해 진행됐다.

박순영 씨는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는 우리를 가축처럼 팔아넘긴 것에 대해 부끄러워해야 한다"면서 "입양인들의 희생 위에 물질적 풍요를 누린 모든 사람은 사과해야 하고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배진시 몽테뉴해외입양연대 대표는 "박 씨는 끔찍하고 잔인한 물리적, 정서적 폭행을 당했다"면서 "외국으로 입양 간 아동들의 상당수가 물리적 폭력, 정서적 폭력, 성 폭력을 당했다"고 했다.

그는 "한국 정부는 해외 입양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해야 한다"면서 "책임자 처벌, 배상과 보상도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어린 시절 이모와 함께 있는 박순영 씨
[본인 제공]

다음은 벨기에 입양인 박순영 씨와 질문-답변

-- 출생지는.

▲ 1976년 10월 1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친생 부모에 대해서는 아는 게 전혀 없다.

—- 왜 입양됐나.

▲ 나는 벤치에 버려졌다고 한다. 지나가던 두 수녀 분이 나를 발견해 화이트 일리(White Lily)라는 고아원에 데려갔다고 들었다. 그리고 나는 벨기에로 입양됐는데, 태어난 지 1년 6개월 만이었다. 그러니 한국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다.

-- 양부모는 어떤 일을 하셨나.

▲ 양어머니는 건설회사의 비서직으로 일했고, 양아버지는 토목 엔지니어였다. 두 분은 같은 직장의 상사-부하 관계였다.

-- 양부모는 왜 본인을 입양했나.

▲ 아이를 가질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당시 벨기에에서 입양은 유행이었고, 매우 '세련된' 선택이었다. 그런데 내가 입양 온지 4년만에 양부모들에게는 친아들이 태어났다.

모델 클라우디아 쉬퍼
[SNS 캡처 사진]

-- 양엄마는 예쁜 딸을 원했다고 했는데.

▲ 사진 속에 있는 어린 시절의 나는 예뻤지만 그들이 원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양엄마는 클라우디아 쉬퍼 같은 모델을 보며 그런 예쁜 딸을 원했다고 했다. 그런 분이 왜 나를 입양했는지 묻고 싶다.

-- 본인은 어릴 때부터 굶주렸다고 했는데.

▲ 양어머니는 거식증이 있었고, 자신을 뚱뚱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거식증을 나한테 전이했다. 양어머니는 나에게 뚱뚱하다고 했다. 언제나 "충분히 마르지 않았다", "못생겼다"고 했다. 그리고 나를 굶겼다. 영양실조 상태로 방치했다는 의료 문서도 있다. 영양 결핍으로 내 몸에 종기가 생기기도 했다.

-- 양어머니가 음식을 철저히 통제했나.

▲ 케이크나 단 음식은 한 번도 허용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생일파티에 가서도 케이크나 주스는 못 먹게 했다. 사과 1개와 물만 허용했다. 나는 옷을 고를 권리도 없었다. 이는 18살이 될 때까지 지속됐고 나는 늘 배가 고팠다.

입양 당시 아기 박순영 씨
[본인 제공]

-- 양어머니가 폭력적이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 그 폭력은 나를 향한 증오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나는 양어머니에게 불필요한 존재였다. 전혀 닮지 않았기에 더욱 원치 않는 아이였다.

-- 양아버지는 어떠했나.

▲ 양아버지는 일 때문에 늘 집에 없었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비교적 친절했다. 종합적으로 보면 양부모는 허영심이 강했고, 외부의 시선과 체면만을 중요하게 여겼다.

-- 본인은 모욕을 많이 당했나.

▲ 내가 어느 정도 성장한 후에는 공개적 모욕과 폭력이 시작됐다. 양어머니의 뜻에 따르지 않으면 친구들 앞에서 옷을 입은 채로 찬물 샤워를 해야 했다.

-- 외국에서 버려졌었다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양어머니는 공원에서 놀던 나를 두고 친아들만 데리고 가버렸다. 나는 카이로에서 두 차례 납치 시도를 당했는데, 양어머니는 내가 그런 일을 당해서 짐이 되지 않기를 바랐던 것으로 보인다.

-- 양어머니가 팔을 부러뜨리려 했다는 것은 무슨 이야기인가.

▲ 내가 공부하고 있으면 양어머니는 옆에 와서 검사하듯이 지켜봤다. 사소한 실수에도 머리채를 잡아당기거나 벨트를 휘둘렀다. 어느 날은 나의 왼팔을 잡고 반대 방향으로 비틀며 "너 같은 아이를 입양한 내 고통을 너도 느끼게 해주겠다"고 했다. 이는 팔을 부러뜨리려는 행위로 나는 생각했다.

이모와 함께 있는 어린 시절 박순영 씨
[본인 제공]

-- 정서적 학대는 어느 정도였나.

▲ 그녀는 내 정신을 부수려 했다. 나를 지적 장애인이라고 사람들에게 말하곤 했다. 여러 번 나한테 "입양한 걸 후회한다",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식탁에서는 매일 같이 "멍청하다", "못생겼다, "창녀의 딸"이라고 했다. 나는 집에 돌아가는 것이 매일 두려웠고, 주말은 지옥이었다. 여러 번 가출했지만 결국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 사실을 알리지 않았나.

▲ 나는 몸에 멍이 든 상태로 학교에 간 적도 많았다. 그런데 선생님들 누구도 문제 삼지 않았다. 주변에 계속 도움을 요청했지만, 아무도 내 말을 믿지 않았다. 양부모는 지역사회에서 부유했고, 존경받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16살 때는 경찰에 신고했지만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했다.

-- 본인은 양어머니의 폭력에 저항하지는 않았나.

▲ 18세가 되었을 때 처음으로 저항했다. 당시 얼굴을 맞고, 처음으로 전력을 다해 맞섰다. 그때 처음으로 나 자신을 지켰다.

어린 시절 박순영 씨
[본인 제공]

-- 양부모의 친아들은 집에서 어떠했나.

▲ 집에서는 신처럼 대우받았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다. 10살까지 젖병을 물었고, 부모와 함께 잤다. 반면에 나는 인간적 온기와 접촉을 갈망하며 문 앞이나 침대 밑에서 잠들곤 했다.

-- 친아들이 10살인데도 젖병을 물었다는 것은 무슨 이야기인가.

▲ 이는 양어머니의 정신병과 무관하지 않았다.

-- 성폭력 피해는 없었나.

▲ 양어머니는 속옷을 내리고 내 주요 부위를 들여다보기도 했다. 머리를 말려주며 내 몸에 유사 성행위 같은 것을 하기도 했다. 매우 이상했고 불편했다. 왜 그러는지는 묻지 못했다. 양어머니가 무서웠기 때문이다.

-- 벨기에의 다른 입양인들도 학대를 많이 당했나.

▲ 그렇다고 생각한다. 다만 두려움과 수치심 때문에 말하지 못할 뿐이다.

박순영 씨
[본인 제공]

-- 본인의 학창 시절은 어떠했나.

▲ 고교 시절 우리 반에 한국 출신 입양아동 3명이 있었다. 우리는 항상 '밥그릇', '칭총(아시아인을 비하하는 말)' 같은 인종 차별적 욕설을 들어야 했다.

-- 본인은 항공사 스튜어디스가 됐는데, 왜 그 직업을 선택했나.

▲ 어릴 때 비행기를 자주 탔다. 양아버지가 토목기사여서 아프리카, 카이로, 싱가포르 등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나는 비행기에서만은 편히 잠들 수 있었다. 비행기 안은 중립적 공간이었고, 그런 장소에서는 폭행당하지 않았다. 승무원들은 어머니보다 훨씬 다정했고 아름다웠다. 나는 그들이 내 어머니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영향으로 나는 승무원이 됐다.

-- 스튜어디스로 일하면서 인종차별을 겪지 않았나.

▲ 벨기에에서는 백인이 아니면 항상 언어폭력을 겪는다.

딸(오른쪽)과 함께한 박순영(왼쪽) 씨
[본인 제공]

--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인가,

▲ 하루하루가 살아남기 위한 싸움이었다.

-- 가장 슬펐던 순간은 언제인가.

▲ 내 인생 전체가 슬프다.

--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 내 딸의 존재다. 딸은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해준 존재이며, 내 삶의 이유다.

-- 본인은 친생부모를 찾고 있는데, 그 이유는.

▲ 특별한 바람이라기보다는 내 딸과 손자를 위해서다. 혹시 내가 사랑의 결과였는지도 알고 싶다. 현재 친생부모 찾기는 전혀 진전이 없다.

-- 한국 정부에 하고 싶은 이야기는.

▲ 한국 정부는 우리를 가축처럼 팔아넘긴 것에 대해 부끄러워해야 한다. 한국 정부와 벨기에 정부는 도덕적, 재정적 책임이 있다. 그리고 입양인들의 희생 위에 물질적 풍요를 누린 모든 사람은 반성하고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책임져야 한다. 입양기관들은 인류에 대한 범죄를 저지른 '도둑'이라고 생각한다. 사법적 책임을 져야 하고 배상도 해야 한다.

keunyo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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