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례적 ‘항소 포기’ 무슨 일?
서울중앙지검은 항소 시한인 지난 7일 자정을 앞두고 1심 판결에 대한 항소를 제기할 예정이었으나 법무부와 협의한 대검찰청이 돌연 이에 반대하면서 항소장 제출이 무산됐다.
9일 한겨레 취재에 따르면 , 대장동 수사·공판팀은 지난 3일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등 대장동 일당 5명의 항소 제기를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이틀 뒤인 5일 서울중앙지검 지휘부도 대검에 항소 승인을 요청했고, 6일 오전엔 대검 담당 과장이 반부패부장에게 이를 보고했다. 그런데 항소 시한 당일인 7일 오후부터 이상기류가 감지됐다. 오후 7시30분께 “대검 반부패부장이 (항소를) 재검토해보라고 했다”는 얘기를 들었고, 서울중앙지검 지휘부를 통해 대검에 항의했지만 서울중앙지검 지휘부가 항소 시한을 7분 앞둔 오후 11시53분 ‘항소 불허’를 통보했다는 게 수사팀 주장이다. 이 과정에서 대검 담당 부서 또한 애초 항소에 동의했으나 법무부의 의견을 전달받은 뒤 입장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대검은 법무부가 항소에 부정적인 의견을 냈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부인하지 않고 있다. 당시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과 정진우 서울중앙지검장이 직접 전화 통화로 항소 포기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 대장동 사건 영향은? 왜?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1심에서 중형을 선고받은 대장동 민간업자들은 항소심에서 더 무거운 형을 선고받지 않게 됐다. 또 대장동 사건으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추징금 규모도 대폭 줄어들 가능성이 커졌다. 검찰은 1심에서 대장동 일당이 배임으로 총 7886억원의 부당이득을 얻었다며 전액 추징을 요구했지만, 1심은 정확한 손해액 산정이 어렵다는 이유 등으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배임이 아닌 업무상 배임 혐의를 적용해 총 473억여원만 추징했다.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탓에 항소심에서는 이 금액 이상을 국고로 환수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과 정진상 전 더불어민주당 정무조정실장의 ‘대장동 재판’ 공소유지에도 검찰에 직간접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이 사건은 이번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유 전 본부장 등 사건과 별도로 서울중앙지법 형사33부에서 재판이 열리고 있다. 현재 재판이 중단된 이 대통령 사건의 핵심 공소사실은 대장동 개발 과정에서 성남시에 손해를 입힌 배임 혐의다. 검찰은 유 전 본부장 등 사건 1심에서 대장동 개발 계획 수립의 정점에 ‘이재명 성남시장’의 지시가 있었고, 민간업자들에게 개발이익이 돌아가 성남도시개발공사에 4895억원의 손해를 끼쳤다고 봤지만, 1심 재판부는 “이 대통령이 직접 민간업자들을 사업 시행자로 내정했다거나 그렇게 지시한 사정은 보이지 않는다”며 유착 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유 전 본부장 사건 항소심에서 대장동 사건의 뼈대인 이 대통령의 관여 여부와 특경가법 배임죄 성립 여부의 법리적 판단을 한번 더 받아볼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 셈이다.
검찰 내부에선 논란을 감수하고도 법무부·대검이 항소 포기로 방향을 설정한 배경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왔다. 한 검사장은 “내년 지방선거와 맞물려 1심에서 인정하지 않은 이 대통령의 공모 부분이 항소심에서 (유죄로) 뒤집히지 않게 하려고 검찰의 항소를 막았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 법무부 개입 적법성 논란
법무부는 대장동 사건의 항소 포기에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하지 않았다면서도 대검으로부터 사건을 보고받고 관련 의견을 제시한 사실은 인정하고 있다. 검찰청법 8조에 따라 법무장관은 검찰총장을 지휘·감독할 순 있으나 이재명 대통령 관련 사건이라는 이유로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면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논란으로 번질 수 있다.
검찰 내부 반발도 확산하고 있다. 전국 검사장 단체대화방에선 대검과 중앙지검 사이에 구체적으로 어떤 지시가 오갔는지, 법무부에서 항소 포기를 지시했는지 등을 설명해야 한단 의견이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검찰 간부는 “민생 사건이나 금융 사건 등 항소를 자제할 사건도 아니라서 법무부 검찰국에서도 수사팀의 항소 의견을 뒤집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항소 포기 과정에서 ‘윗선’의 개입 여부를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배지현 김지은 강재구 박지영 기자 bee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