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박정희가 지운 ‘5월1일 노동절’…62년 만에 ‘세계표준’ 이름 찾았다 - Supple

이승만·박정희가 지운 ‘5월1일 노동절’…62년 만에 ‘세계표준’ 이름 찾았다

민주노총이 지난 5월1일 서울 중구 숭례문 근처에서 연 2025 세계노동절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 땅에서 열린 첫 노동절 행사는 102년 전에 있었다. 1923년 5월1일 저녁 8시 서울 종로 중앙기독교청년회관에 노동자 2천여명이 운집했다. 종로서에서는 고등계 형사와 순사가 출동해 경계에 나섰다. 이날 조선노동연맹회는 동맹파업과 노동시간 단축 등을 요구하는 시위를 계획했다. 일제가 이를 불허하자 기념 강연회로 대체한 것이다. 청년·노동운동가 박일병이 연사로 나서 ‘노동기념에 대하여’를 주제로 연설했다.

“메-데-(메이데이)라는 것은 삼십칠년 전에 미국의 노동자들이 노동시간을 여덟 시간으로 하라는 결의안을 자본가 측에 제출하고 자본가의 횡포에 반항한 결과 마침내 자본가의 항복을 받고 목적을 달성하게 됐는데, 그 운동을 시작했던 날이 오월일일이다. 우리 조선 노동동포도 하루속히 자각하고 일치단결하여 노동운동을 하지 않으면 아니 되겠다.”

1886년 5월 미국노동연맹 노동자들이 시카고에서 8시간 노동 쟁취를 위한 파업을 했는데, 경찰은 이를 유혈진압했다. 1889년 이를 기념하기 위해 5월1일을 메이데이(국제노동절)로 정했다. 종로에 모인 노동자들 역시 노동시간 단축, 임금인상, 실업 방지 등을 요구하며 역사적인 첫 노동절 행사를 마쳤다. 당시 조선일보는 ‘노동제일 기념’ 보도를 통해 “약 2시간 동안 열변을 토하여 간간히 일어나는 환호의 소리는 장래를 진동했으며, 일반 군중이 다 같이 만세 삼창한 뒤 퇴회하였다”고 전했다.

첫 노동절 행사 이후 “메이데이 기념일은 간혹 ‘노동자의 명절’이라는 의미에서 노동절로 불리기도 했지만, ‘근로자의 날’로 불리지는 않았다”고 한다. ‘노동’의 의미는 일하는 인간에게 방점이 있다면, ‘근로’는 조선총독부의 ‘근로보국대’처럼 강제동원의 부역 의무라는 의미가 담겼기 때문이다.(박홍근, ‘메이데이는 어떻게 근로자의 날이 되었나’, 2024)

해방 이듬해인 1946년 5월1일 노동절 행사는 좌익(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과 우익(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대한노총)으로 쪼개져 열렸다. 미군정이 전평 등 좌익계열 단체를 불법화하자, 대한노동총연맹으로 명칭을 바꾼 대한노총이 노동절 행사를 단독으로 주관하게 된다.

기념일의 반공화…노동절 날짜 바꾼 이승만

이승만 대통령은 ‘노동절’ 명칭이 아닌 ‘5월1일’이라는 날짜가 불만이었다.

“메이데(메이데이)는 아라사(러시아) 사람들이 세계 혁명을 하기 위하야 해온 것인데 미국인들은 이것을 축하해왔고 아라사인들은 도처에서 폭동을 일으키고 질서를 문란케 하고 내란을 일으키었는데 지금 미국인들이 이것을 깨닫고 특별히 주의해서 난동분자들이 없도록 만들고 있는 중이니까 모든 자유국가 사람들은 여기에 대해서 무슨 파동을 받지 않아야 될 것이다.“(1954년 4월30일)

“내가 한 가지 (대한)노총 동지들에게 알려주고자 하는 것은 본래 메이데이를 노동사회에서 기념일로 만들어 놓은 것은 공산당이 발기를 해서 공산당의 선전을 위해서 만들어 놓은 날이니만치 우리 전국 노민이나 또는 세계 노민들이 경축할 날을 정하려 하면 어느 날도 할 수 있을 터인데 구태여 공산당이 세계를 정복할 목적으로 선전을 대대적으로 하는 그 날을 우리가 정해서 할 필요는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1957년 5월21일)

‘기념일의 반공 달력화’(박홍근)를 꾀했던 이승만 정부 아래에서 대한노총은 1958년 10월 노동절을 5월1일에서 대한노총 설립일인 3월10일로 바꾼다. 이승만 대통령은 1959년 3월10일 ‘제1회 전국노동절기념대회 치사’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일년의 하루를 노동절로 정해서 이날을 경축해 왔는데 5월1일을 노동절로 정한 것은 공산당이 노동자들을 다 묶어서 공산당을 만드는 데 힘쓰기 위해서 한 것이며 또 세계의 모든 노동자들이 이것을 지키도록 했던 것이다. 이런데도 불구하고 자유국가들은 남들이 그렇게 하니까 우리도 그날을 정해서 한다는 습관으로 5월1일을 노동절로 해왔으며 또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도 이날을 노동절로 지켜왔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금년에 처음으로 이 날짜를 고쳐서 3월10일을 노동절로 정해서 지키기로 되었는데, 이렇게 되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다 잘 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니 이날을 다 축하하여 앞으로 해마다 노동절의 이 절차를 지켜나가기를 바라는 것이다.”

1963년 4월 제정된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 국회의안정보시스템

노동→근로…‘산업전사’ 포상 행사로

노동절에서 ‘노동’을 지운 것은 박정희 정부였다. 1963년 4월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이 제정·시행됐다. ‘3월10일을 근로자의 날로 하고 이날을 근로기준법에 의한 유급휴일로 한다’는 내용이다.

‘5월1일’에는 대못을 박았다. 노동절을 쫓아내며 비어있던 5월1일을 ‘법의 날’로 지정(1964년)한 것이다. 제헌절이 있는데 왜 ‘법의 날’을 또 만드느냐는 반론도 있었지만, 미소 냉전 시기 공산진영이 중요시하는 ‘5월1일 노동절’을 자유진영의 ‘5월1일 법의 날’로 바꾸려는 미국의 요구가 작동했다.

“박정희 정권 들어 ‘근로자의 날’은 국가기념일로 격상되었지만, 이제 메이데이와 아무 연관이 없는 날이 되었다…정부에서 산업 전사와 모범 사용자에게 공로패를 주는 장면이 전국에 중계되었으며…메이데이 행사에서 나왔던 ‘8시간 노동제 관철’과 같은 구호는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박홍근)

‘5월1일’이 복권된 것은 30년 뒤인 김영삼 정부 때였다. 1980년대 후반부터 노동계는 세계 각국의 메이데이 기념에 맞춰 ‘5월1일 노동절’ 복권을 요구했다. 1989년 ‘노동법 개정 및 임금인상 투쟁본부’는 제100회 노동절을 앞두고 ‘근로자의 날’을 ‘노동자 불명예의 날’로 규정했다. ‘법의 날’을 지키려는 법무부의 반대가 있었지만, 1994년 국회는 ‘근로자의 날’을 3월10일에서 5월1일로 변경했다. 다만 ‘노동절’로 명칭을 변경해 달라는 노동계와 민주당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국경일에 관한 법률에 따라 3·1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에만 ‘절‘을 붙인다는 이유였다. ‘법의 날’은 한동안 ‘근로자의 날’과 동거를 하다 2003년에 4월25일(1895년 재판소구성법 시행일)로 바뀌었다.

여야 의원 노동절 부활 법안 7건 발의

그리고 30년이 다시 흘렀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기간이던 지난 5월1일 “근로자의 날을 노동절로 개칭해 노동존중 가치를 바로 세우겠다”고 했다. 22대 국회에는 ‘근로자의 날’ 명칭을 ‘노동절’ 또는 ‘노동자의 날’로 바꾸는 법안이 7건 발의됐다. 더불어민주당 6건(대표발의 김주영 이수진 박홍배 이용우 안호영 김태선), 국민의힘 1건(김위상)이다.

한국노총 출신 김위상 국민의힘 의원은 “근로라는 용어는 자발성과 주체성이 강조되는 현대 노동의 개념과는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그간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국제노동기구나 OECD 회원국 대부분이 노동절(Labor Day) 또는 이에 상응하는 명칭으로 기념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만 ‘근로자의 날’이라는 표현을 고수하는 것은 국제적 보편성과 노동인권 인식을 반영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했다.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장인 안호영 의원은 “근로라는 용어는 일제강점기부터 사용되어 온 것으로 ‘부지런히 일함’이라는 국가 통제적 의미가 담겼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몸을 움직여 일함’으로 정의되는 노동이라는 가치 중립적 의미를 담은 용어로 대체하고자 한다”고 했다.

지난 9월 국회 환노위 법안심사소위에서도 노동절 명칭 변경에 대한 여야 이견은 없었다. ‘노동절로 할 것이냐 노동자의 날로 할 것이냐’ ‘근로기준법, 근로복지공단, 산업재해근로자의 날 등 다른 명칭은 어떻게 할 것이냐’ ‘내년부터 교사·공무원도 노동절 유급휴일을 적용해야 한다’ 등의 논의가 오갔다. 여야는 일단 노동과 근로가 혼재돼 사용되는 현실을 반영해 기념일에 국한한 명칭 변경에 합의했다. 국회에는 노동절을 ‘공휴일’로 지정해 공무원·교사 등도 공식적으로 쉴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공휴일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여러 건 발의돼 있다.

국회는 지난 26일 오후 본회의를 열고 ‘근로자의 날’을 ‘노동절’로 바꾸고, 이에 따라 법률 명칭도 바꾸는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법률안’을 재석 의원 254명 가운데 찬성 209명, 반대 29명, 기권 16명으로 의결했다.

이 법안에 반대한 의원은 국민의힘 28명, 개혁신당 1명이다. 강대식 고동진 곽규택 김도읍 김민 김선교 김승수 김희정 나경원 박덕흠 박성민 박성훈 박수영 박정하 박정훈 안상훈 엄태영 이인선 이종욱 이주영(개혁신당) 이철규 이헌승 임종득 정성국 조은희 최수진 최은석 한기호 한지아 의원이 반대표를 던졌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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