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일 국민의힘 대선 경선 참여를 선언한 이철우 경북지사는 전날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를 찾은 사실을 전하며 “(윤 전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면 사람을 쓸 때 가장 중요시 볼 것은 충성심이라는 것을 명심할 것’을 당부했다. 주변 인사들의 배신에 깊이 상처받은 것으로 짐작된다”고 말했다. 윤 전 대통령의 이 발언은 이날 대선 출마를 선언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를 겨냥한 발언으로 받아들여졌다. 지지자들을 향해 ‘한동훈이 대선 후보가 되는 것을 절대 용납해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윤 전 대통령이 “이번 선거에서 우리 당이 승리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한 사실도 김 지사는 공개했다.
윤 전 대통령이 전날 윤상현 의원과 극우유튜버 전한길씨를 만난 사실도 전씨의 인터넷 홍보페이지를 통해 공개됐다. 전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전한길뉴스’라는 사이트에 윤 전 대통령과 관저 앞뜰에서 찍은 사진과 함께 “(윤 전 대통령이) 나야 감옥가고 죽어도 상관없지만 우리 국민들 어떡한, 청년 세대들 어떡하나(라고 우려했다)”고 전한 뒤 “그분의 걱정은 언제나 국민과 나라였다”고 주장했다. 탄핵반대 집회에 나온 지지층을 향한 ‘전언 메시지’인 셈이다.
이런 윤 전 대통령의 행보를 두고 국민의힘 친윤석열계 안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한 친윤계 의원은 한겨레에 “파면당한 대통령이 메시지를 내는 게 당에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며 “이번 대선에선 침묵을 지켜주는 게 윤 전 대통령도 당도 사는 길”이라고 말했다. 한 영남권 초선 의원도 “아무리 억울하고 분해도 지금 시점에 메시지를 내면 안 된다”며 “보수정권 승리, 보수재건을 바라신다면 (윤 전 대통령이) 더는 말을 하면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당내 경선을 앞둔 대선 주자들은 이런 우려에는 귀를 막고 윤 전 대통령의 ‘전언 정치’에 판을 깔아주는 데 열심이다. 1차 경선은 100% 국민 여론조사 방식이지만, 2차와 최종 경선은 당원투표 50%·국민 여론조사 50%를 합산해 치르는 만큼, 소수일지라도 결집력이 강한 윤 전 대통령 지지층의 표를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11일 대선 출마를 선언하는 나경원 의원도 ‘윤심’을 등에 업고 경선을 치르려는 주자 가운데 한명이다. 당내에선 윤 전 대통령이 파면 이튿날인 5일 나 의원에게 대선 출마를 권유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윤석열 나경원 낙점설’까지 회자됐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이 ‘윤석열의 46년 지기’이자 ‘내란죄 피의자’인 이완규 법제처장을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한 것을 두고도 ‘윤석열 배후설’이 파다하다. 국민의힘의 한 영남권 재선의원은 “한 권한대행이 하고많은 사람 중에 왜 내란 가담 혐의로 수사를 받는 이를 헌법재판관으로 앉혔는지, 윤 전 대통령을 빼면 어떻게 설명이 되겠느”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한편 윤 전 대통령 쪽은 11일 오후 5시에 한남동 관저를 떠나 서초동 집으로 윤 전 대통령 부부의 거처를 옮길 계획이라고 이날 오후 밝혔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