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샷!] "결국 불법 노동으로 몰리게 된다"

외국인 유학생 30만 시대…'합법적 알바'는 제한

'공장 근무'·'세탁물 분류'…불법 알바 공고 만연

"12명이상 불법취업으로 체포"…"단속 걸리면 추방"

"대학은 유학생 유치 넘어 관리·조력 적극 나서야"

코로나19 전후로 한국 내 외국인 유학생 증가
(서울=연합뉴스) 서대연 기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전후로 한국 내 외국인 유학생이 큰 폭으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4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에 따르면 OECD는 최근 보고서에서 2018년과 2022년 사이 한국 내 유학생 수 증가폭은 1.5배에 육박하며 OECD 내 10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이날 서울 시내 한 대학교에서 이동하는 유학생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2025.12.20 dwise@yna.co.kr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인턴기자 = "학비를 충당하려고 고깃집에서 일하고 있어요. 평일 5~6시간, 주말엔 점심부터 밤까지 일하지만 시급은 최저임금이고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았어요."

강남구의 한 식당에서 일하는 베트남 국적의 유학생 A씨는 지난 17일 이렇게 털어놨다.

국내 체류 외국인 유학생이 30만 명을 넘어선 가운데, 일자리가 필요한 학생들이 법적 회색지대나 불법지대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온라인에서는 생활비와 학비 부담으로 불법 취업도 감수하겠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이른바 '비자 필요 없음'을 내건 불법 아르바이트가 그 틈을 파고들고 있다.

이력서 작성 중인 유학생들
[연합뉴스 자료 사진. 본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 외국인 유학생 30만명 시대…불법 알바의 유혹

올해 8월 기준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통계에 따르면 국내 체류 외국인 유학생은 30만5천여 명으로, 사상 처음 30만 명을 넘어섰다.

유학생 수는 해마다 가파르게 늘고 있지만, 이들이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통로는 제한적이다.

유학생 비자(D-2·D-4)는 학업을 목적으로 부여되는 체류자격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아르바이트가 금지돼 있다.

다만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관할 출입국·외국인관리사무소의 '체류자격 외 활동 허가'를 받아 시간제 취업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어 능력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 데다 학업 성적 기준과 학교장의 확인서, 고용주의 근로계약서 등 준비해야 할 서류가 적지 않다. 또 허가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경우도 많아 당장 생활비가 필요한 유학생 입장에서는 제도를 활용하기 어렵다는 토로가 나온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면접 후 고용주에게 허가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학교 확인서·근로계약서·사업자등록증 등을 챙겨 출입국에 가면 된다"는 식의 안내가 올라온다.

그러나 외국인 유학생 커뮤니티에서는 "학생 비자는 초반 두 학기 동안 취업이 제한되고, 이후에도 학교·출입국 승인을 받아야 하며, 무엇보다 거절 확률이 높다" (이용자 'WGA***') 등의 '증언'을 볼 수 있다.

통상 학기 중 주 10~20시간으로 제한되는 노동 시간 역시 한국 생활에 적응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실제로 서울의 한 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체코 출신 유학생 B씨는 "식당 사장님이 허가를 위해 필요한 서류를 주지 않았다"며 "아르바이트 허가를 받는 과정이 큰 스트레스였다"고 말했다.

'비자 필요 없다'는 유학생 대상의 불법 아르바이트 공고
[카카오톡 이용 화면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합법의 통로가 좁은 상황 속 유학생들을 유혹하는 것은 '비자 필요 없음'을 내건 불법 아르바이트 공고다.

유학생 아르바이트 구직용 단체채팅방에는 '공장 근무', '세탁물 분류' 등 노골적으로 '비자 필요 없음'을 강조한 불법 공고가 공유되고 있다.

상단에는 과외·학원 강사 공고처럼 보이게 글을 올린 뒤, 페이지를 아래로 끝까지 내리면 바텐더 등의 '위장 공고'가 올라오는 등 교묘한 구인 방식도 있다.

유학생의 국적에 따라 일자리가 양극화되기도 한다.

영어권 국적 유학생들이 영어 강사나 고액 과외 시장으로 진입하는 반면, 다수 비영어권 유학생은 음식점·카페·주방 보조 등 최저임금 수준 서비스업으로 몰리는 것이다.

국내 체류 유학생은 베트남(10만7천여 명)과 중국(8만6천여 명) 출신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등 상당수가 아시아권 국적에 집중돼 있다.

성북구의 한 카페에서 일하는 우즈베키스탄 출신 유학생 C씨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친구 소개로 일을 시작했다"며 "같이 일하는 친구들의 국적도 우즈베키스탄, 중국, 일본 등 다양하다"고 말했다.

다만, 영어권 유학생들의 일자리 역시 취업 허가를 벗어난 불법 소지가 적지 않다.

핀란드 국적의 유학생 D씨는 "초등학생에게 영어 회화 과외를 하고 있다"며 "따로 허가받지는 않았고, 시급 5만원을 현금으로 받고 있다"고 말했다.

레딧(Reddit) 이용자 'Infamous_Grape_7023' 게시글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해외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에 지난 2월 이용자 'Inf**'는 "한국에서 외국인 유학생은 설 자리가 없다"(International Students in Korea don't stand a chance)는 글에서 "한국의 외국인 유학생 고용 시스템이 공정하지 않게 짜여 있는 것 같다. 결국 불법 노동으로 몰리게 된다"고 주장했다.

해당 글에는 "유럽에는 유학생 일자리가 한국보다 훨씬 많다"며 "한국에는 학생들이 할 수 있는 합법 일자리가 거의 없고, 있어도 사실상 최저임금 수준뿐"(이용자 'Grog**')이라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또 같은 달 자신을 한국에 거주하는 노르웨이 출신 유학생이라고 밝힌 'bana***'은 "부모의 재정 지원을 받지 않는 유학생들이 쌀과 라면으로 버티지 않고 어떻게 돈을 벌며 살아가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I don't understand how students who don't get financial help from their parents manage to earn money without having to survive on rice and ramen)는 글을 올렸다.

그는 의료비와 보험료 등 고정 지출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언어 문제로 합법적인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고, 과외는 비자 취소 위험 때문에 할 수 없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런가 하면 지난 9월에는 이화여대 재학생이라고 밝힌 'Ok**'가 "전액 자비로 유학 중인데 고향이 홍수 피해를 입어 가족 지원이 끊겼다"며 "등록금이 약 400만원이고 학교도 도움을 주지 않는다. 주당 10시간 아르바이트로 월세와 생활비를 겨우 내지만 부족하다. 무엇을 할 수 있느냐"는 글을 올렸다.

이에 "유학생은 할 수 있는 일 종류가 제한적이다. 누군가는 '비공식적인(불법) 일자리를 추천할 수도 있지만, 그런 일은 위험을 동반한다"('Go**')는 댓글이 달렸다.

2025 부산 외국인 유학생 채용박람회
[연합뉴스 자료사진. 본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 "유학생을 인재가 아닌 재정 보전 수단으로 바라봐"

대학들도 불법 시간제 취업과 관련해 경고하고 있다.

작년 칼빈대는 "불법 아르바이트 단속에 걸린 유학생이 벌금 처분을 받았다"며 "미리 시간제 취업을 허가받은 뒤 정상적인 아르바이트만 하라"고 공지했다. "단속에 걸리면 추방당할 수도 있다"고도 경고했다.

인하대에서도 2023년 "불법적인 취업 및 노동을 하지 말라"며 "대학에서는 벌금 감액이나 출감에 어떠한 도움도 줄 수 없다"고 공지했다. "12명 이상이 불법 취업으로 체포돼 최소 200만원 벌금을 부과받았다"고 알리기도 했다.

인하대는 올해 7월에도 '외국인 유학생 시간제 취업 허가 안내'라는 제목의 공지를 재차 올렸다.

전문가들은 유학생 증가 추세 속 이들의 일자리 문제를 구조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정봉수 강남노무법인 대표공인노무사는 "외국인 학생 비중이 20~30%에 이르는 대학도 많다"며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 유학생 대부분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현실"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에서는 학교가 관련 내용을 충분히 안내하고, 신고 대행과 가능 여부를 알려주는 등 관리해야 할 책임이 있다"며 "학생에게 문제가 생길 경우 학교 역시 방조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불법 취업이 적발될 경우 처음에는 경고로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두 번 이상 허가 없이 취업하면 퇴거 또는 출국 사유가 될 수 있다"며 "안타까운 사례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사전에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신청하면 가능 여부를 안내받고, 괜찮으면 승인해준다"고 설명했다.

김동명 총신대 국제교육원장·특임 교수는 '유학생을 인재가 아닌 재정 보전 수단으로 바라보는 구조'를 지적했다.

김 교수는 "제도적 제약과 현실 사이의 괴리로 인해 많은 유학생이 불법 노동의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다"며 "엄격한 성적 요건과 복잡한 시간제 취업 허가 절차 등 비현실적인 규제가 유학생들의 합법적인 경제 활동을 가로막고, 오히려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는 불법 노동 시장으로 밀어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제도적 문제를 지적하는 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각 대학 역시 단순한 유학생 유치를 넘어 이들이 한국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관리자이자 조력자'로 적극 나서는 것이 시급하다"며 "행정 지원 강화와 합법적 근로 기회 연계, 권익 보호 체계 구축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minj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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