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고통 찍고 싶어" 청산가리 먹이고 찰칵...사진광의 최후[뉴스속오늘]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1983년 1월21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범인 이동식의 모습. /사진=동아일보 갈무리43년 전 오늘인 1982년 12월14일. 서울 호암산 기슭에서 20대 여성이 청산가리를 먹고 고통 속에 죽어갔다. 이 여성에게 청산가리를 건넨 사람은 아마추어 사진작가 이동식(당시 42세). 유달리 '죽음'에 집착했던 이씨는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여성 모습을 사진에 담고자 이같은 범행을 저질렀다. 경찰에 잡히자 "예술 사진을 찍은 것뿐"이라는 주장을 펼친 그는 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넝마주이에서 '사진광' 된 이동식

1940년 경북 대구에서 태어난 이동식은 14세 때 서울로 상경해 15년간 폐지와 고철 등을 주우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갔다. 넝마주이로 살며 특수절도 등으로 세 차례나 옥살이한 이씨는 30대 중반 뒤늦게 사진에 취미를 붙였다.

보일러 배관공으로 일하며 사진작가 꿈을 키운 이씨는 피 흘리며 죽어가는 닭 사진으로 공모전에 입상했다. 이후 유수의 공모전에서 10여 차례 입상하면서 1982년 한국사진작가협회에도 가입했고 개인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배관공 월급보다 몇 배 비싼 외국산 카메라를 살 만큼 사진에 대한 애착이 강했던 이씨는 곧 아이디어 고갈로 공모전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게 됐다.

그는 죽음을 소재로 처음 입상한 때를 떠올리며 급기야 아내를 죽어가는 사람처럼 연출해 사진을 찍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 일로 부부싸움이 잦아지자 평소 다니던 이발소 직원 김모씨(당시 24세)를 새 모델로 낙점했다.

"출세시켜 주겠다"며 꾀어낸 여성 독살…숨 멎는 내내 찍었다

/사진=tvN '알아두면 쓸데있는 범죄 잡학사전 - 알쓸범잡 시즌2' 방송화면 캡처이동식은 보조 면도사로 일하던 김씨에게 "몸매가 예쁘다. 누드 모델로 쓰고 싶다. 모델로 성공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 나와 사진 찍으러 가자"며 회유했다. 이씨 꾐에 넘어간 김씨는 이튿날 그와 함께 호암산 중턱을 찾았다.

이씨는 추워하는 김씨에게 감기약으로 위장한 청산가리 캡슐을 건넸다. 약을 삼킨 김씨가 이내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며 몸부림쳤지만 이씨는 미리 설치한 2대의 카메라로 그런 김씨 모습을 묵묵히 담을 뿐이었다.

이씨는 김씨 숨이 멎은 뒤에도 손을 묶거나 옷을 벗기고 촬영을 이어 나갔다. 21장이나 찍고 나서야 그는 사체를 낙엽으로 덮은 후 옷가지와 신발을 40m 떨어진 곳에 버렸다. 김씨 시신은 범행 후 약 한 달 뒤인 이듬해 1월 행인에게 발견됐다.

범행 부인하던 이동식, 결국 사진에 발목 잡혔다…형장 이슬로

경찰은 김씨 주변 인물을 탐문 수사한 끝에 이동식을 용의자로 특정하고 체포했다. 이씨 주거지 압수수색 과정에선 아내, 전처, 불특정 여성들이 나체로 죽어있는 모습을 연출한 사진이 대거 발견됐다. 여기엔 김씨 사진도 있었다.

이씨는 "김씨 숨이 멎은 후 찍은 사진"이라며 살해 혐의를 부인했지만 경찰은 이씨가 촬영 목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봤다.

사건 실마리는 사진에서 나왔다. 이씨가 사진에 대한 애착으로 고가 장비를 쓴 덕에 현미경 분석이 가능할 정도로 고화질 사진을 만들어낸 것. 수사팀에 합류한 사진 전문가는 사진을 현미경으로 확대해 결정적 단서를 발견했다.

사람이 사망하면 살갗의 솜털인 '명지털'이 서서히 눕게 되는데 김씨 명지털 모양은 21장의 사진에서 제각각 달랐다. 시간 순서대로 사진을 나열한 전문가는 이씨가 김씨 숨이 멎는 과정 전부를 카메라에 담은 사실을 밝혀냈다.

/사진=tvN '알아두면 쓸데있는 범죄 잡학사전 - 알쓸범잡 시즌2' 방송화면 캡처이씨는 뒤늦게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김씨가 먼저 살자고 들러붙어 떼어내기 위해 죽였다" "김씨가 불륜 사실을 알리겠다고 해 살해했다" 등 거짓말을 일삼았다. 또 "난 예술 사진을 찍은 것뿐"이라며 피해자를 모욕하기까지 했다.

이씨가 전처를 비롯해 여성 다수를 살해했다는 의혹도 나왔다. 그러나 이씨 엽기 행각이 해외에서도 이슈되자 당시 전두환 정부가 "나라 망신시키지 말고 얼른 끝내라"며 경찰을 압박하는 바람에 수사팀은 여죄를 캐내지 못했다.

김씨 살인·시체유기 혐의로만 재판에 넘겨진 이씨는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형량이 무겁다며 항소와 상고를 거듭했지만 모두 기각당하면서 판결이 그대로 확정됐다. 이씨는 1986년 5월27일 서울구치소에서 사형에 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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