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일 재계에 따르면 한국경제인협회는 지난 12일 회원사 의견을 수렴해 '생산적 금융 활성화를 위한 제도 개선 과제'를 정부 측에 건의했다. 여기에는 금융과 산업자본 간 융합 활성화를 골자로 한 금산분리 규제 완화완이 담겼다. 일반지주회사의 GP(펀드운용사) 보유 허용, 지주회사 내 CVC(벤처캐피탈) 외부자금 조달 한도(40%)와 해외투자 한도(20%) 확대 등이 한경협의 요구다.
재계가 금산분리 완화 화두를 꺼낸 것은 AI 산업의 발전속도가 빨라지며 '게임의 룰'이 바뀌었다는 판단에서다. 금융-산업 자본 간의 분리가 아니라 융합에 기반한 대규모 자금 확보가 반드시 필요한데 현행 법이 이런 '뉴 노멀'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깔렸다.
실제 글로벌 AI 패권 경쟁이 본격화하며 '선제적 대규모 투자'가 새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AI의 경우 시장 선점자의 승자독식 가능성이 크기에, '자본'이 핵심 경쟁요소가 됐다. 오픈AI·소프트뱅크·오라클 등은 5000억 달러(약 680조원) 규모의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인텔은 유럽 내 반도체 생산, 가공, R&D(연구개발) 능력 확보를 위해 약 112조원 규모의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중국은 중앙정부 주도로 수백조원 규모의 AI 투자를 예고했다.
하지만 막대한 투자금을 기업 자체가 조달하는 것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AI 밸류체인에 있는 모든 기업에 해당하는 명제다. AI 사업은 반도체, 데이터센터, 전력원, ESS(에너지저장장치) 등을 모두 포괄하는 프로젝트로 진행된다. AI 데이터센터 1GW짜리를 짓는데만 70조원이 필요하다. 우리 정부는 첨단기금 75조원과 민간금융·연기금·국민·산업계 자금 75조원을 합쳐 총 15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는데 이 역시 충분치 않다.
기업에서는 "자체 투자라는 소총 하나로 'AI 세계대전'에 참전 중"이라는 말이 나온다. 꼭 금산분리 완화가 아니더라도 대규모 AI 투자금 확보의 길을 정부가 열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금산분리를 완화할 경우 일부 대기업이 금융을 사금고 처럼 활용할 것이란 우려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걱정을 해소할 수 있으면서도, AI 시장에서 우리 기업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새로운 투자체제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이날 '제2차 기업성장포럼'에서 "미국은 AI에 2조 달러 정도 투자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우리는 그럴만한 여력과 자금이 없다"며 "유례없는 투자자금이 필요한 상황인데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우려했다. 그는 "금산분리 완화를 바라는 게 아니다"며 "투자를 감당할 새로운 제도를 마련해달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집중화된 자금과 플랜을 제대로 만들지 못하면 AI 게임에서 살아남기 쉽지 않다"며 "하다 못해 금산분리 완화라도 하게 된다면 우리가 해법을 찾아오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