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을 적대하는 사회에…뇌병변 작가, 예술로 ‘발언’하다

10일 서울 중구 모두미술공간에서 문승현 작가(오른쪽)와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신상미 예술지원부 부장이 문 작가의 작품 앞에 나란히 앉아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저는 제 목소리를 전달하기 어려운 사회에서 살아왔습니다. 특히 제 겉모습에 편견을 가지신 분들께는 제 뜻을 제 목소리로 전달하는 게 매우 어렵죠. 제 작업은 제 목소리가 무엇을 말하는지 궁금하신 분들께 거는 대화입니다.”

화가이자 시인, 공연 예술 연출가, 기획자로 활동 중인 문승현(51) 작가는 자신의 예술 활동을 ‘발언’이라고 표현한다. 뇌병변 장애를 가진 그는 목소리를 내어 말을 건네는 게 쉽지 않다. 대신 그림과 글, 퍼포먼스, 전시 프로그램으로 자신의 뜻을 전한다. 장애인의 목소리에 좀처럼 귀 기울이지 않는 사회에서 그가 ‘발언’할 수 있었던 건 단지 예술적 재능과 의지 때문만은 아니다. 장애인 예술 단체인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하 장문원)의 지원은 화가였던 그에게 더욱 다양한 형태로 장애와 사회에 대해 이야기할 공간을 열어줬다.

문승현 작가의 회화 작품 ‘아침’(2023). 문승현 작가 제공

장애인의 문화 예술 활동 진흥을 위해 2015년 만들어진 장문원이 문 작가와 같은 이들의 창작 활동을 지원해온 지 벌써 10년이 됐다. 장문원 10주년 기념식을 하루 앞둔 지난 10일 서울 중구 모두미술공간에서 장문원과 함께 성장한 여러 장애 예술가들의 대표로 문 작가를 만났다.

문 작가가 처음 예술 세계에 발을 들인 것은 그림을 통해서다. “종이와 연필만 있으면 그리는 걸 좋아했어요. 초등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 얼굴을 그렸더니 선생님이 ‘정말 잘 그렸다’고 칭찬해주시고 어머니·아버지에게도 알린 모양이에요. 집안 형편이 넉넉지 못했던 것 같지만, 대학은 수석 합격으로 들어갔어요. 대학 들어가던 해에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시고 어머니가 생계를 책임지셔야 했죠. 아버지의 공로에도 감사드리지만, 어머니의 희생이 없었다면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10일 서울 중구 모두미술공간에서 문승현 작가가 자신의 작품 앞에 앉아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문 작가는 그림 작업 이외에도 장애인 예술가들의 모임 ‘선사랑드로잉회’, 창작 그룹 ‘옐로우닷컴퍼니’ 등을 이끌며 공연 연출, 기획, 퍼포먼스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간 것은 다른 장애 예술가들과의 교류 덕분이었다. “2011년 서울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잠실창작스튜디오(현 서울장애예술창작센터)에서 장애 예술가들과 만난 게 지금의 활동으로 이어지는 시작이 된 것 같습니다. 당시 작업을 계속 이어가는 것이 어려웠는데, 다른 장애 예술가들과 대화하며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죠. 내 소통 능력이나 의지가 덜해서가 아니라, 어떻게 보면 사회적인 것일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이런 문제 의식에서 출발해 장애 예술가들의 사회적 위치를 바꾸는 작업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선사랑드로잉회와 했던 것은 장애 예술가들의 위치를 바꾸는 것이었어요. 이전까지의 지원은 장애 예술가를 그저 수혜자로 보는 시혜적 차원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의 작품 판매 수익금 일부를 기부하고 사회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도록 했어요.” 2019년 장문원의 지원을 통해 ‘장애와 도시와 건축의 상상여행’이라는 프로젝트도 추진했다. 장애인 당사자가 여행 후 자신이 상상하는 도시의 모습을 그려보면서 장애인과 함께 사는 도시를 제안하는 내용이다.

문승현 작가의 영상 작업물 ‘경계에서’(2024). 문승현 작가 제공

이 프로젝트를 통해 문 작가는 장문원의 신상미 예술지원부장과 인연을 맺었다. 이날 인터뷰에 함께한 신 부장은 이 프로젝트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문 작가님이 이 프로젝트를 기획해서 주로 지체장애가 있는 작가님들과 케이티엑스(KTX)를 타고 지역 건축 명소를 찾아가 드로잉을 했어요. 20명이 가는데 당시 열차 칸에 휠체어 자리가 다 합해서 5석이었어요. (이런 제약 속에서도) 현재 도시와 건축이 장애를 어떻게 담아내고 있는지 연구한 새로운 시도였고, 그래서 주의 깊게 볼 수밖에 없었죠.”

문 작가는 이 프로젝트와 관련한 자신의 문제 의식을 이렇게 설명했다. “다르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인데요, 이를 적대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있습니다. 저는 그런 태도를 만드는 사회적 구조가 있다고 봐요. 거리의 많은 음식점과 카페, 편의점 입구에 휠체어 경사로가 설치된다면 적어도 점심 시간에 들어갈 수 있는 식당을 찾아 돌아다니는 어려움은 줄어들겠죠. 언젠가 로봇이 제 목소리를 인식 가능한 소리로 바꿔줄지도 모르죠. 그럼 어떻게 달라지지?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뭐지? 이런 질문들을 하는 거죠.”

10일 서울 중구 모두미술공간에서 문승현 작가가 이야기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문 작가는 장문원의 지원을 통해 ‘흐르는 벽으로 대화하기’ ‘비어있는 혹은 가득한’ ‘함께 삶을 짓는 장애인 건축학교’ ‘소리와 공간의 언어’ ‘우리 몸 크로키 수업’ 등의 예술 프로젝트도 진행해왔다. 신 부장은 ‘함께 삶을 짓는 장애인 건축학교’에 대해 “장애인 작가들이 건축에 대해 처음부터 배우며 우리가 살아가야 할 공간과 장소와 건축에 대한 부분을 그려나갈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이라고 소개했다. “새로운 상상력을 갖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좋은 프로그램이었던 것 같아요. 이렇게 장애 당사자가 직접 기획한 예술 프로그램들이 더 많이 있어야 하죠.”

문 작가와 같은 장애 예술가들이 더 다양한 ‘발언’을 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장문원이 해야 할 일이 많다. 지난 10년간 법적 정비와 예산 확대, 장애 예술 공간 마련이라는 인프라를 다졌다면, 향후 10년은 열매를 맺는 기간으로 삼겠다고 신 부장은 밝혔다. “앞으로 10년간은 장애 예술가 발굴과 육성, 그리고 장애 예술가들이 예술 활동을 통해 경제적 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 합니다.” 그는 다른 지원 기관과의 협력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장문원이 주춧돌이 되고 다른 지원 기관들도 이걸 딛고 서서 장애 예술에 대한 지원이 확장되면 좋겠습니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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