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교학점제는 고등학교 교육이 올바른 방향으로 재편되는 데 있어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각자 선택하는 것이 다른데, 똑같이 줄 세우기는 안돼죠. 중장기적으로는 고교학점제에 걸맞는 대입 제도를 국민들과 함께 만들어 가야 합니다.”
최교진 교육부 장관은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한국교육시설안전원에서 한겨레와 만나 존폐 논란이 있던 고교학점제와 관련해 반드시 성공시키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올해 고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전면 시행된 고교학점제는 학생의 진로와 적성에 맞춰 과목을 선택하는 것으로 일정 이수 기준을 통과해야 졸업이 가능한 제도다. 학생 선택권을 보장하고, 모든 학생이 최소한의 성취수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는 ‘책임교육’을 목표로 한다. 중학교 교사 출신으로 세종시교육감(3선)을 지낸 최 장관은 지난달 15일 임명됐다.
최 장관은 이날 인터뷰에서 고교학점제뿐 아니라, 정부가 국정과제로 꼽은 인공지능(AI) 인재 양성, 시민교육 강화, '서울대 10개 만들기' 등 교육 분야 정책과 사교육 과열 등 현안 전반에 대해서도 적극적로 입장을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최근 고교학점제 관련 폐지론이 강하게 나올 정도로 논란이 컸고, 교육부에서 고심 끝에 개선안을 내놨다. 고교학점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고교학점제는 고등학교 교육이 올바른 방향으로 재편되는 데 있어 아주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각자 선택하는 게 다른 데 똑같은 (과목, 시험 등을) 기준으로 줄을 세우는 건 맞지 않다. 아울러 소위 학력 하위 20% 정도의 아이들에 대해선 이제까지 대한민국 교육이 다 포기하고 왔던 게 사실이다. 고교학점제를 통해 ‘이 아이들은 어떡하지?’라며 관심을 갖게 되고, (미이수로 인해 졸업이 어려워지는 상황을 막기 위해) 대책을 세우기 시작한 점은 매우 긍정적으로 본다.”
―고교학점제는 이른바 최소성취수준보장을 학교가 책임지겠다는 것이다. 올해 1학기를 돌아봤을 때 학생 낙인 효과, 미이수 학생 지원 시스템 미비 등 현실적으로 무리한 측면들이 있었다.
“고교학점제를 준비하면서 가장 놓쳤다고 볼 수 있는 게 기초학력 문제다. 최소성취기준을 (충족하려면) 기초학력이 뒷받침돼야 하고, 기초학력 문제는 초등학교 3~4학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러니 적어도 2025학년도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에게 전면 적용하기로 했으면, (제도를 도입·추진한) 2017년부터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초등학교 고학년, 중학교 과정에서 촘촘하게 대책을 세웠어야 하는데 준비가 안 된 채로 제도를 맞닥뜨리게 된 거다. 학습권이 있는 학생들이 못 알아듣는데도 교실에 그냥 앉혀 놓고 있다는 것은, 학생의 인권을 침해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초등학교~고등학교까지 체계적인 진단과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연말까지 국가기초학력지원포털을 구축하는 등 제도적 지원을 할 계획이다.”
―내년에는 고교학점제 선택 과목 수강이 본격화된다. 혼란이 커질 수 있는데.
“시도교육감협의회와 논의하고, 국가교육위원회와도 협력해 추가 대책을 올해 안으로 만들 것이다.”
―고교학점제 안착의 전제 조건으로 내신·수능의 절대평가 전환 등 입시제도 개편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지난달 19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도 이에 대한 소신을 밝힌 적이 있다.
“절대평가로 가는 취지는 옳다고 생각하고 (방향성에) 동의는 한다. 그런데 그 얘기를 꺼내는 순간, 현안보다 그 문제가 더 이슈가 될 우려가 있다. 지금은 그걸 주제로 삼기보다 2028학년도 대입을 앞둔 아이들(현 고1)이 큰 피해 없이 갈 수 있도록 하는 데 집중을 해야 한다. 아울러 대입 개편은 교육부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국가교육위원회의 중요한 과제다. 향후 중장기적으로 고교학점제에 걸맞은 대학 입시 제도를 국민과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인공지능(AI) 특수목적고등학교를 지역에 짓자’는 생각을 밝혔다. 고교 서열화를 부추긴다는 측면에서 특목고는 장관 교육철학과 배치되는 건 아닌가.
“인공지능 3대 강국이 실현되려면 전 국민이 인공지능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어야 하고, 또 세계와 경쟁해 (기술을) 이끌어나가는 전문 인재도 필요할 거다. 인재 양성을 위해 인공지능 영재학교를 세우겠다는 건 아니고, 서울이 아닌 지역에 있는 (기존) 영재학교 또는 과학고에서 인공지능 교육을 집중적으로 한다는 계획인 것 같다. 교육부가 할 일은 국가에 필요한 인재를 잘 길러서 배치하고, 모든 아이가 인공지능을 잘 활용할 수 있게 가르치는 것이다. ‘인공지능 시대 교육정책 방향’을 연내 발표할 계획이다.”
―최근 학교 현장에서 리박스쿨 사태 등 ‘교실 극우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일상적으로 헌법 교육, 민주시민교육이 이뤄져 학생들 스스로가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편향되지 않은 교육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일반 교사들을 포함해 방과후·특기적성교육 교사들도 (치우치지 않는) 시각을 유지해야 한다. 아울러 새 정부 국정과제로 시민·헌법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만큼, 교육활동 전반에서 시민교육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정책적 기반을 강화하고 지원해야 한다. 국회와 협의해 학교 시민교육 관련법 제정을 추진하고, (교육부 내) 조직 보강도 검토하고 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이재명 대통령의 핵심 교육 공약이다. 최근 기본 방향이 발표됐다.
“정부가 지역 소멸에 대비하고, 입시경쟁 해소를 위해 지금까지도 계속 뭔가를 해왔다. 그런데도 점점 더 나빠지고 어려워지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교육부 혼자 하는 게 아닌 여러 부처가 함께하는 정책이다. 교육부가 (사업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지역 대학과 산업체, 연구기관이 머리를 맞대 상향식으로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일종의 자주성·자율성이 담보돼 성공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에 대해 상위권을 위해 문을 열어주는 것 아니냐, 교육의 시선이 너무 위에만 맞춰져 있는 것 같다는 비판도 있다.
“사실 근본적인 문제일 수 있는데, 우리는 그런 시선이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된다. 학교 다닐 때 공부 잘하는 학생은 늘 이름이 불린다. 하지만 대다수는 내내 개근해도 졸업하는 날까지 한 번도 이름이 불리지 않는다. 개근상을 받아도 누구누구 외 몇 명. 그 몇 명에 불과할 뿐이다. 학교에서 이것을 너무 당연한 것처럼 가르쳤다. 내가 (공부 잘해서 이름 불리는 친구보다) 착하고, 동생들도 잘 돌보고, 요리를 잘해도 점수를 잘 따지 못한다는 이유로 주눅 들어 사는 것이 너무 일상화된 게 (한국의) 학교 문화다. 세종시 교육감 시절에 ‘세종의 모든 교실에서는 ‘25명의 1등’이 함께 공부하는 교실을 만들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 대학 문제도 그렇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꼭 성공해야 하는 사업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인문사회계열이나 비거점 대학이 소외되지 않도록 균형 있게 설계해야 한다.”
―사교육 과열 문제도 심각하다. 최근 ‘4·7세 고시’ 등 과도한 선행학습이 논란이 됐다.
“과도한 선행학습은 아동 발달을 저해하는 행위로, 아동학대 성격이 있다고 판단한다. 사교육 문제의 근저에는 학부모들의 불안 심리가 자리 잡고 있다. 공교육이 책임질 부분은 충실히 감당하면서 동시에 ‘빨리 시작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사회적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최근 신설한 영유아사교육대책팀에서 부적절한 사례를 점검하고 대응을 강화할 계획이다.”
―취임 때부터 교권 회복을 여러차례 강조했다.
“최근 악성 민원 등으로 경력 5년도 안된 교사들이 교단을 떠나고 싶다는 말을 많이 한다고 들었다. 교사로서 정당하게 생활 지도를 하고 있는데도 ‘혹시 괜찮을까, 신고 당하지 않을까’ (위축돼) 불안 속에 살고 있다는 거다. 교사들이 안심하고 당당하게 자기의 교육 철학을 펼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도 제대로 교육받을 수 있고, 학부모도 안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진행/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정리/신소윤 기자 y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