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무 맞아서 치료를 했는데도 걷지 못하고 숨을 못 쉬는 정도였다.”
캄보디아 캄포트주 보코르산 범죄단지 인근에서 감금됐다가 지난 8월9일 구조된 ㄱ씨는 자신이 목격한 대학생 박아무개(22)씨의 생전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다. ㄱ씨는 박씨가 마약 운반에 강제로 동원됐다가 자신이 감금된 조직에 팔려왔다며 ‘심한 폭행으로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증언했다. 결국 박씨는 지난 8월8일 새벽 2시께 캄포트주의 상카트캄퐁베이에서 검은색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현지 경찰은 검안 뒤 박씨 사망 증명서에 ‘심장마비(고문으로 인한 극심한 통증)’를 사인으로 적었다.
‘고수익 일자리를 보장해준다’는 말에 속아 캄보디아로 향했던 한국 청년들이 현지에서 협박·강요에 의해 피싱 범죄에 연루되거나 감금·고문을 당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급기야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12일 현지 사정을 아는 교민들과 경찰 이야기를 들어보면, 피해자들은 대개 텔레그램과 구직 사이트 등에 올라온 ‘한달에 수백만~수천만원을 주는 텔레마케터·아이티(IT) 일자리가 있다’는 게시글에 꾀인 청년들이다. 정명규 캄보디아한인회 회장은 한겨레에 “작년에 (범죄 집단에서) 도망쳐 나온 사람들을 한국으로 돌려보낸 게 200명은 된 것 같고, 올해는 벌써 400명 이상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항공권과 숙식을 제공한다는 말에 비행기 티켓까지 끊어 프놈펜 국제공항에 도착한 한국 청년들은 보통 승합차에 실려 영문도 모른 채 ‘웬치’라고 불리는 범죄단지로 끌려간다. 여권·휴대전화 등 소지품을 빼앗긴 청년들은 ‘로맨스 스캠’ 등 각종 피싱 범죄에 연루되면서 피해자와 가해자를 오가는 처지가 된다. 범죄 가담을 거부하면 고문을 동반한 협박이 이어진다. 범죄단지에 구금됐던 ㄱ씨 역시 보이스피싱 일을 거부하자 수갑을 찬 채로 쇠파이프와 전기충격기로 구타당하고, 기절하면 전기충격을 가해 정신을 차리게 한 뒤 다시 폭행했다고 증언했다. 국제앰네스티는 올해 6월 낸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전역에 이런 사기 조직이 적어도 50곳이 넘는 것으로 분석했다.
현지 경찰에 신고해도 당국이 소극적 대응을 한다는 점이 사건을 키우는 요인이다. 캄보디아 경찰은 피해자의 ‘본인 직접 신고’ 원칙을 고수하고, 심지어 출동을 위해 ‘감금된 사진·영상’까지 요구한다. 현지 사정을 잘 아는 경찰 관계자는 “과거 대사관이나 가족들 신고로 출동하면 피해자들이 ‘나는 감금된 게 아니다’, ‘여기서 계속 돈을 벌 것이다’라고 나오는 경우도 있어 본인 직접 신고만 접수하게 됐다”고 말했다. 사단법인 한인구조단의 권태일 단장은 “친구를 부르면 풀어주겠다고 해 지인을 끌어들인 뒤 탈출하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정 회장은 “피해자들은 금전적으로 급해서 오는 경우가 많은데, 현실적으로 캄보디아에서 큰돈을 벌기가 쉽지 않다는 걸 청년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해영 기자 hycho@hani.co.kr, 박찬희 기자 chpar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