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참는게 현명?'…남편 살해한 아내 선처한 판사의 고뇌

재판부 징역 4년 선고 "결국 모두가 원하지 않는 결과…착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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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연합뉴스) 정경재 기자 = "피고인은 신앙으로 참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그저 오랜 세월 그렇게 참고 지내온 게 현명했던 건지…"

17일 전주지법 형사11부 재판장인 김상곤 부장판사는 살인 혐의로 기소된 A(59·여)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하면서 판결 전까지의 고뇌를 내비쳤다.

김 부장판사는 "재판부는 이번 사건이나 다른 유사한 가정폭력 사건을 보면서 매우 착잡한 심경을 금할 수 없다"고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그는 "피고인이 그때 다른 방법을 고려해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 아쉬운 마음이 든다"며 "요즘은 가정폭력을 신고하면 수사기관이 신속하게 대응하고 그 정도가 심하면 강제 치료까지 할 수 있는데…"라고 안타까워했다.

김 부장판사는 "(가정폭력을) 참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결국 남편도 졸지에 사망하고 본인은 살인범으로 여기에서 재판받고 있다"며 "이 모습을 보는 자녀들, 피해자인 남편의 가족들 그 누구에게도 원하지 않는 결과"라고 입술을 깨물었다.

A씨는 지난 8월 6일 오후 11시 10분께 전주시 덕진구의 자택에서 전선으로 60대 남편의 목을 졸라 살해한 혐의로 이날 법정에 섰다.

남편은 당시 만취해 잠든 상태여서 A씨의 공격에 저항하지 못했다.

김 부장판사는 이날 A씨의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범행에 이른 경위를 참작해 최대한 선처하겠다고 했다.

A씨가 수십년간 결혼생활을 하면서 알코올중독을 앓는 남편으로부터 모진 가정폭력을 당한 점을 재판부도 충분히 고려한다는 의미였다.

사건 이후 A씨의 자녀는 물론이고 숨진 남편의 여동생까지 나서 "힘들게 살아온 피고인을 최대한 선처해달라"고 탄원한 것도 재판부의 이번 판단에 영향을 줬다.

김 부장판사는 "대법원 양형기준을 보면 이런 사건(살인)에 대해서는 최소 5년 이상의 형을 선고하게 돼 있다"면서도 "아무리 선처하더라도 이 정도의 형은 정해야 하므로 고심 끝에 선고한다"며 감경 요소를 최대한 적용해 A씨에게 양형기준보다 1년 적은 징역 4년을 내렸다.

jay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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