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농어촌 학교 전교생 중 1등급 한명도 없어…최저 등급 '탈락'
지역 영어 학원가 수강 문의 이어져…"영어도 투자해야 하나" 학부모들 '한숨'
교육계 "조기 사교육 영향 영어 난도 올라가면 절대평가 취지 살릴 수 없어"

[연합뉴스 자료사진]
특히 도시에 비해 영어 실력이 구조적으로 뒤처지는 농어촌 일부 학교의 경우 영어 1등급 학생이 단 한명도 없는 등 대학에서 요구하는 최저등급을 못 맞추는 학생이 속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7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과 광주시교육청에 따르면 지난달 13일 치러진 2026학년도 수능 영어 영역에서 1등급(원점수 90점 이상)을 받은 수험생 비율은 3.11%(1만5천154명)에 불과했다.
영어 절대평가는 경쟁보다는 학업 성취도 자체를 평가해 사교육비를 줄이겠다는 목표로 2018학년도 수능부터 시행됐는데, 올해는 9번의 수능 중 가장 낮은 1등급 비율을 기록했다.
지역별 1등급 비율은 평가원이 수능이 치러진 이듬해에야 공개하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알 수 없지만, 전남 곡성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는 74명의 수험생 중 단 1명도 1등급을 받지 못했다.
따라서 학생들이 최저등급을 못 맞추는 학생이 상당수인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올해 영어 영역의 경우 '불수능'을 넘어 '용암'에 비유될 만큼 평가원이 난도 조절에 실패하면서 절대평가 취지를 흐렸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절대평가의 골자는 일정 수준의 학습으로도 예측할 수 있는 성취가 동반돼야 하는데, 난도가 과도하게 높아지면 이 원칙이 무너지면서 학부모·학생들에게 불신이 생기고 있다.
정훈탁 광주시교육청 장학관은 "영어는 조기 사교육의 영향을 크게 받는 과목인데 난도가 급격히 올라가면 절대평가 취지를 살릴 수 없다"며 "6월 모의고사에서 1등급을 받았던 중상위권 학생들이 이번 수능에서 2∼3등급으로 떨어져 입시 현장이 혼란스러워졌다"고 말했다
조정아 장학사는 "절대평가의 목표는 공교육으로도 충분히 입시를 대비할 수 있도록 만드는 데 있다"며 "공교육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대비하지 않으면 사교육 접근성이 낮은 비수도권 학생들이 불리한 환경에 처할 수 있다고"고 밝혔다.
절대평가 취지를 둘러싼 혼란은 학부모와 학생들의 불안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경신여고 3학년 수험생 자녀를 둔 정모(52) 씨는 "딸이 모의고사에서 항상 1∼2등급을 받아 영어는 사교육 없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며 "최저 기준을 맞추지 못해 발목을 잡혔는데, 영어도 투자해야 하나 싶어 마음이 무겁다"고 토로했다.
정씨는 "딸이 가고 싶어 하던 대학을 포기해야 할 처지에 놓이면서 심적으로 크게 흔들리고 있다"며 "절대평가라 안심했는데 되레 영어 공부를 더 시켰어야 했나 하는 생각만 든다"고 전했다.
지역 학원가에서는 벌써 '용암 영어'의 여파로 수강 문의가 시작되고 있다.
김주형 광주대성 디퀀텀 부센터장은 "상위권 학생들도 예상치 못하게 영어에서 등급이 낮게 나오면서 최저 충족 요건에 많이들 미끄러졌다"며 "수능 성적표를 배분한 지난 5일부터 상담 전화가 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봉선동에서 17년째 영어 강사로 활동 중인 폴영어학원 김장효 씨는 "영어가 절대평가로 바뀌면서 그동안 학생들이 영어 공부를 등한시해 왔다"며 "올해처럼 지문과 선지가 까다로워지면 상위권·비 상위권 간 성적 양극화는 심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문제를 많이 푸는 것보다는 한 개의 문제를 파고들어 지문 독해 능력, 선지의 오답·정답을 판별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대응책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앞서 오승걸 평가원장은 역대 최저치를 기록한 영어 1등급 비율과 관련해 "교육과정의 학습 정도를 평가한다는 절대평가 취지에 맞는 시험 난이도를 목표로 했으나 당초 취지와 의도에 다소 미치지 못하는 결과가 나온 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6∼10% 수준의 1등급 비율을 목표치로 삼고 출제 방향을 잡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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