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2심 재판부 판단은 달랐다. A씨가 피해자를 위해 1억원을 형사 공탁한 점 등을 이유로 형량을 절반 가까이 줄인 징역 27년을 선고했다. 이 사건으로 피해 여성은 손목 신경이 손상됐고, 남자친구는 사회 연령 만 11세 수준으로 살아가며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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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 기사인 척하다 문 닫히기 직전 침입…피해자들 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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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2023년 5월 13일 토요일 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A씨는 대구 북구에서 배달 기사 복장으로 돌아다니며 범행 대상을 물색하던 중 원룸 건물로 들어가는 피해자 B씨(24)를 발견하고 뒤쫓기 시작했다.
A씨는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는 B씨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그는 현관문이 닫히기 직전 침입한 뒤 미리 챙겨온 흉기를 꺼내 B씨 손목을 베고 성폭행을 시도했다. 때마침 B씨의 남자친구 C씨(24)가 들어와 범행을 말렸고, A씨는 흉기를 마구 휘둘렀다.
얼굴과 목, 어깨 등을 크게 다친 C씨는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과다 출혈로 여러 차례 심정지가 발생했다. 그는 20시간 넘는 수술을 받고 40여일 만에 가까스로 의식을 회복했다. 하지만 저산소성 뇌 손상으로 사회 연령이 만 11세 수준까지 떨어지는 영구 장애를 얻었다. 4개월간 입원해 치료비만 5000만원 이상 들었고, 가족 도움을 받아 일상생활을 해야 했다.
B씨도 왼쪽 손목 동맥이 끊어져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신경이 손상됐다. 감각이 거의 없고 저림 현상도 나타났다.
A씨는 범행 4일 전부터 치밀하게 계획한 것으로 조사됐다. 배달 기사로 일한 적 있던 A씨는 건물에 있는 배달 기사들이 여성들을 따라 들어가도 별다른 의심을 받지 않는 것을 이용해 성범죄를 저지르겠다고 결심했다. 범행 전날에는 인터넷에 다수의 살인 사건을 검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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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 형사공탁, 피해자 후유증 호전"…징역 50년→27년 '감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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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A씨에게 징역 30년을 구형했지만, 1심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유기징역형으로 최장기인 징역 50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은 평생 치유하기 어려운 고통에 괴로워하고 있다"며 "피고인은 피해자들과 그 가족으로부터 용서받지 못했고, 피해 회복을 위해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A씨는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했다. A씨는 최후 진술에서 "평생 죄인으로 잘못을 잊지 않고 반성하며 살아가겠다"고 사죄했다.
항소심에서 A씨는 형량이 절반 가까이 줄어든 징역 27년을 선고받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자들로부터 용서받지 못하고, 앞으로 모방 범죄 발생을 막기 위한 예방적 차원에서도 중형을 선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피고인이 수사 단계에서부터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점과 C씨를 위해 1억원을 형사 공탁한 점, C씨와 몸싸움을 벌이면서 다소 우발적으로 범행한 점, 피해자들이 1심 때보다 후유증이 미약하나마 호전돼 보이는 점 등을 고려하면 유기징역을 가중한 법정 최상한인 징역 50년은 너무 무거워 보인다"고 감형 이유를 밝혔다.
형사 공탁은 피고인이 피해자와 합의하지 않은 경우 법원 공탁소에 일정 금액을 맡겨 피해 보상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피해자가 공탁금을 찾아가면 합의된 것으로 본다.
감형 소식이 보도되자 온라인상에서는 비판 여론이 일었다. 누리꾼들은 "피해자가 용서 못 했는데 왜 감형해 주냐", "평생 장애 갖고 살아야 하는데도 감형이라니", "양형 기준을 높여야 한다", "합의 의사가 없다는데 1억원 공탁에 23년을 깎아주냐" 등 비판에 나섰다.
A씨 측이 상고하지 않아 형은 확정됐다. A씨는 55세가 되는 2050년 출소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