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백악관 “김정은과 조건없는 대화 열려 있어”…‘깜짝 회동’ 열릴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9년 6월30일 판문점에서 만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전제조건 없는 대화에 열려 있다”며 공을 다시 북한으로 보냈다. 하지만 북한이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핵 보유 인정’을 내건 만큼 실제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존 외교 문법을 따르지 않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스타일상 김 위원장과 ‘깜짝 회동’할 가능성도 점쳐지지만, 2019년처럼 한국이 참여하는 ‘남·북·미 3자 회동’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백악관 관계자는 30일(현지시각) ‘트럼프 행정부는 핵 문제를 언급하지 않고도 북한과 대화하는 데 열려 있느냐’는 언론 질의에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과 어떤 전제조건 없이 대화하는 것에 여전히 열려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지난 21일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만약 미국이 허황한 비핵화 집념을 털어버리고 현실을 인정한 데 기초하여 우리와 진정한 평화공존을 바란다면, 우리도 미국과 마주 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 것에 대해 미국이 ‘전제조건 없는 대화’로 답한 셈이다.

이달 말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아펙) 정상회의를 계기로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미국이 일종의 ‘메시지 관리’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는 “북한이 비핵화 불가 입장을 절대 고수하는 상황에서 북한을 대화 무대로 유인하려는 메시지로 보인다”며 “비핵화를 전제로 한 협상보다는 만남과 대화 재개에 중점을 두겠다는 의도로, 현실적인 접근”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만나더라도 정식 회담이 아닌 2019년과 같은 ‘깜짝 만남’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9년 6월28~29일 일본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직후 트위터를 통해 김 위원장에게 “잠깐 만나자”고 제안했고, 30일 판문점에서 회동이 성사됐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비핵화에 대한 북-미 간 간극이 크지만, 그걸 인정하고 대화에 나선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상황은 6년 전과 달리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먼저 북한을 둘러싼 대외 환경이 그때와 상당히 다르다. 북한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와 군사협력을 심화했고, 중국과의 전략적 연대도 강화하고 있다. 2019년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에 좀 더 적극적이었다면, 9월 중국 전승절을 계기로 북·중·러 3국 전선이 공고해진 지금, 북한은 급할 게 없다는 태도를 보인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지난 29일 기자간담회에서 아펙 계기 북·미 정상 만남 가능성에 대해 “냉정하게 보면 북한의 태도에서 변화를 느낄 수 없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도 이런 배경이 깔렸다.

특히 김 위원장은 남북관계 개선에는 뜻이 없음을 연일 강조하고 있어, 한국이 북·미 사이를 파고들 공간이 좁다. 이재명 대통령이 8월25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평화를 만드는 피스메이커가 되면, 저는 페이스메이커가 되겠다”고 했지만, 뛸 수 있는 공간이 좁은 상황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의 핵 고도화 수준뿐 아니라 전략적 태도 자체가 바뀌었다. 북한이 미국이 부른다고 덥석 만날 가능성은 없고, 한국이 거기에 개입하는 데 대해선 더욱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라고 짚었다. 설사 북-미 정상회담이 이뤄진다고 해도 2019년 판문점 회동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합류한 것과 같은 ‘3자 회동’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내다본 것이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