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대다수 인지조차 못해…수사 경찰 "신고 접수 없어"
전문가 "원인 파악 시급…해외 직구 제품에 경각심 가져야"
(서울=연합뉴스) 최원정 기자 = 가정집 내부와 펜션 수영장 등에서 여성들의 사생활이 촬영된 IP(인터넷 프로토콜) 카메라 영상 180여건이 무단 유출돼 논란이 일고 있다.
3일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달 초부터 국내외 불법 음란물 공유 사이트를 중심으로 이들 영상이 유포됐다. 문제의 영상들은 2017년부터 올해 6월까지 촬영됐으며 해킹된 IP캠의 촬영 파일로 추정된다.
유포된 영상들에는 여성이 옷을 갈아입는 장면부터 연인끼리의 민감한 사생활까지 고스란히 녹화됐다. 가정집뿐만 아니라 펜션 수영장과 코인 노래방, 병원, 회사 사무실 등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 피해자의 안방은 2021년 8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2년여 동안 촬영돼 30여 건의 영상이 유포되기도 했다. 불법 촬영 영상이 주로 게시되는 중국의 한 사이트는 이들 영상을 하나당 10∼15달러에 팔고 있다.
이들 영상의 조회 수는 최대 14만건을 기록하며 온라인상에서 빠르게 유포되고 있지만 피해자 대다수가 피해 사실을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해당 영상이 게시된 사이트를 수사 중인 부산경찰청 사이버수사대 관계자는 3일 연합뉴스 통화에서 "현재까지 IP캠 영상 유출 피해자의 신고는 아직 접수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IP캠은 집에 있는 자녀나 노인, 반려동물의 안전상태를 살피거나 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목적 등으로 빠르게 보급되고 있다.
지난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정보보호산업협회의 '정보보호 실태조사'에 따르면 인터넷 이용자의 9.5%가 '개인적 일상생활 공간에서 CCTV와 IP캠 등 영상 감시 장비를 사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IP캠은 유·무선 인터넷망에 연결돼 영상을 실시간으로 송출하거나 원격으로 조종할 수 있다. 외부 접속이 차단된 폐쇄회로(CC)TV보다 설치가 간편하고 저렴하지만 보안에는 더 취약하다.
2019년 2월 정부는 국립전파연구원의 단말장치 기술기준 고시를 개정해 IP캠 구매자는 초기에 일괄적으로 설정된 비밀번호를 변경해야 제품을 쓸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이 역시 국내에서 정식 출시된 제품만 대상이어서 해외 직구 제품은 '관리 사각지대'에 놓인 셈이다.
지난해 3월에는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 내부의 IP캠 영상이 유출돼 여성 환자 수십 명의 진료·시술 장면이 온라인에 유출되기도 했다. 이 병원에서는 중국산 IP캠을 사용했고 비밀번호를 설정하지 않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에 유출된 영상들도 대부분 중국산 IP캠에서 찍힌 것으로 보인다. 한 영상의 상단에는 '23번 인터넷 카메라'라는 중국어가 띄워져 있기도 했다.
특히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쉬인 등 중국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보다 저렴한 제품을 구매하는 이들이 늘어나며 보안 사고가 우려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들 사이트에서는 IP캠을 1만원대에 판매한다는 글도 여럿 볼 수 있다.
잇따른 유출 사고에 시민들은 불안한 기색을 감출 수 없다.
직장인 최모(31·여)씨는 "출근한 뒤 혼자 남은 반려견이 걱정돼 지난해 5월 IP캠을 샀는데 '혹시 나도 영상 유출 피해자 중 한 명은 아닐까'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며 "외출할 때만 IP캠을 켜놓고 집에 들어와서는 카메라를 가리려 스티커 등을 붙여놓는다"고 전했다.
김기형 아주대 사이버보안학과 교수는 "제조사의 클라우드 서버 해킹 같은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경찰과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등 당국의 원인 파악이 시급하다"며 "해외 직구로 들어온 제품에 대한 경각심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away777@yna.co.kr